ELLE DECOR

특이한 소재 특별한 작품 Ⅱ

좋은 목수는 연장 탓하지 않는다지만, 좋은 작가에게 좋은 재료는 반드시 필요할지어다. 특이한 소재로 꾸준히 작업하는 가구 디자이너 4인에게 물었다. 재료가 수단을 너머 목적이 되기도 하느냐고.::가구 디자이너,작가,아트 퍼니처,조명,황현신,패브리커,김동규,김성조,데코,엘르,엘르걸,elle.co.kr::

프로필 by ELLE 2014.05.19

 

황현신 HWANG HYUN SHIN     
골판지로부터 나무를 거쳐 현재는 폴리프로필렌 시트 등을 이용해 수십 겹의 레이어를 쌓는 방식의 작업을 연작으로 발표해 왔다. 평범한 사물들이 촘촘히 모여서 새로운 형상을 만드는 방식에 집중하고 있다.


작업하는 소재는 무엇인가 업계 용어로 ‘단프라 시트’라고 하는데, 정확한 소재명은 PP, 폴리프로필렌이다. 주로 이삿짐 박스로 많이 쓰고, 인테리어 시공할 때 보양재 용도로도 많이 쓴다. 나도 그 정도밖에 모른다.
원래는 골판지로 작업을 시작했다고 알고 있다 골판지로 작업하던 시절에 어떤 브랜드의 의뢰를 받아 남해에 작품을 설치할 일이 생겼는데, 바닷가 근처라서 골판지의 내구성 문제가 걸렸다. 보완할 수 있는 대체재를 찾다가 문득 폴리프로필렌을 써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폴리프로필렌의 특징은 기존에 골판지로 작업할 때는 종이와 종이 사이를 계속 본드로 붙여야 구조가 단단해지는데, 폴리프로필렌은 여러 장을 겹칠 때 그 사이에 아무런 작업을 하지 않고 겉면만 녹이면 결합이 되고 강도도 굉장히 단단하다. 또 녹이는 과정에서 인두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텍스처를 다르게 할 수도 있다.
여러 도구들 중 어떻게 인두를 쓰게 됐나 제일 처음엔 잘린 단면들을 어떻게 가공할 것인가, 열을 가해보자, 그래서 열풍기를 썼다. 그랬더니 우글쭈글하게 텍스처가 생겼다. 초기 작품들이 거칠게 보이는 이유는 열풍기를 썼기 때문이다. 서로 엉겨붙네? 신기하다? 좀 더 열을 가해볼까? 이렇게 점점 더 강한 열을 내는 것을 찾는 실험 끝에 인두로 정착했다.
작품을 보면 보드를 쌓은 형태가 네모반듯하지 않은데 정확히 수직 수평을 맞출 수도 있지만 실제로 무언가가 쌓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내기 위해 기울어지면 그대로 두고 작업한다. 억지로 비뚤게 쌓은 것은 아니다. 인위적인 요소들은 배제하려고 한다.
저렴한 공업용 대체재인데, 그것으로 작품을 만든다는 것에 의미를 두나 예전에는 왜 이 소재를 쓰는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작가로서 추구하는 방향에 대해 정리해 보려고 어릴 적 추억과 연관을 짓는다거나 모티프를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의미 부여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표현이 억지스러워지더라. 결론적으로 모든 선택을 자연스럽게 하기로 했다. 인두질을 할 때 폴리프로필렌이 눌어붙지 않도록 알루미늄 포일을 대는데, 포일이 무슨 첨단 테크놀로지는 아니지 않나. 뭔가 대단한 걸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탈피하고 나니 아주 일상적인 재료들로 작업하는 것에 편안해진 것 같다.
소재의 특징을 작품에서 어떤 방향으로 부각시키고 싶은가 가장 최근작은 캐비닛이었고, 앞으로의 계획은 긴 벤치나 콘솔, 덩어리가 큰 가구들로 확장하는 것이다. 단순한 형태지만 그 덩어리 안에서 디테일한 느낌을 만들어내고 싶기 때문이다.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 뚝뚝 잘린 면이라도 지켜보면 분명히 다른 지점이 있도록, 계속 시도해 볼 생각이다.

 

 

 

 

1 400℃가 넘는 온도로 폴리프로필렌 보드를 녹이는 인두.
2 겹겹이 쌓은 면은 그대로 붙여 자연스러운 느낌을 낸다.
3 작업전의 드로잉과 스케치.
4 레이어드 시리즈, 폴리프로필렌 보드, 2013.

 

 

 

 

패브리커 FABRIKA           
김동규, 김성조 두 명의 디자이너가 폐 천을 가공해 완전히 다른 소재로 바궈 폐 가구를 꾸미는 방식으로 아트 퍼니처를 만든다. 버려진 것, 수명이 다된 것들에게 생명을 연장해 내는 과정은 치유의 감성을 입히는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사용하는 소재는 무엇인가 천이다. 섬유를 전공해서 학교 다닐 때 동대문종합시장에 자주 갔다. 위에는 상가가 있고 지하에 공장이 있는데 커튼이나 소파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새 천이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걸 디자이너로서 재해석해 보자는 의미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부연 설명 없이는 이것이 천인지 알아볼 수 없다 섬유라는 것에 좀 다르게 접근하고 싶었다. 천에 다른 쓰임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연구해 보다가 천이 단단하게 굳어지는 형식을 생각했다. 무언가를 싸거나 두르는 용도가 아니라 그 자체로 형체를 가질 수 있는 방향을 찾고 싶었다.
어떻게 굳히나 어느 정도 영업 비밀인데(웃음). 액체였다가 굳어서 고체가 되는 레진을 천과 결합시킨다.
굳히고 나면 아예 물리적 속성이 달라지는데, 원단의 텍스처나 두께도 중요한가 매우 중요하다. 재질감이 다 표현되기 때문에 잘라진 단면의 느낌까지 고려해서 만든다. 작품에 가장 잘 맞는 원단을 찾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과정 중 하나다.
작품을 한 개씩만 만드는 이유는 고유의 이야기가 담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버려진 의자를 하나 만났으면, 그 의자한테 어떤 이야기를 심어주고 살을 입히고 색을 입힌다. 각각의 사연인 셈이다. 또 전 과정의 90% 이상이 수작업이기 때문에 한 번 만든 걸 똑같이 만들려고 하지도 않고, 사실상 똑같이 만들 수도 없다.
가장 최근 작품인 ‘결’에는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나 보통 나무를 재료로 가구를 만들면, 반듯한 면만 잘라서 쓰고 울퉁불퉁한 겉면 쪽은 사용하지 않거나 분쇄해서 합판을 만든다. 활용도가 떨어지는, 좋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는 나무를 잘라낸 부분을 천으로 이어 나무의 숨을 연장한다는 개념으로 작업했다. 이 작업에는 청바지 소재를 사용했다. ‘결’과 함께 전시 중인 의자는 시트가 다 찢겨나가고 팔걸이가 부러진 채로 버려진 의자를 청담동에서 주워다가 레진으로 팔걸이를 만들어주고 시트 부분을 다시 제작했다.
버려진 가구들을 주우러 다니기도 하나 가구를 얻는 경로는 두 가지다. 누군가가 자신의 스토리가 있는 가구를 보내주거나, 줍거나. 청담동에 가면 좋은 가구들이 버려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가끔 다닌다. 트럭 타고(웃음). 상처를 치유하러 다닌다고 생각한다.

 

 

 

 

1 천끼리 접합하면서 생긴 패턴을 살렸다.
2 연필꽂이, 초받침 등으로 쓰고 있는 조각들.
3 최근작인 결(Flow) 자투리 원목에 청바지, 에폭시, 2014.

 

 

 

Credit

  • EDITOR 이경은
  • PHOTO 장덕화
  • DESIGN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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