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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2. THU

비긴 어게인 99nights in Paris_ EP 2. 파리 거리 산책

미련은 없었다. 14년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파리로 떠났다. 패션 디렉터 출신 서재희의 퇴사 후 스토리, 그 두 번째 이야기. 파리 거리를 산책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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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생애 첫 유럽은 20살 여름 방학이었다.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유럽 배낭 여행이 인기였다. 전통적인 사고 방식에 입각한 아버지는 어린 딸 혼자 한달 이상을 여행하겠다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셨고 설득에 지친 나는 무작정 여행사에 찾아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제일 저렴한! 상품에 등록했다. 말이 여행이지 극기 훈련 같았다. 하루는 다리가 아파 울었고 하루는 말 나눌 이가 없어 울었으니까. 하지만 그 여행 후 내 삶은 달라져 있었다. 해결책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 특히 세상이 넓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정말이지 큰 수확이었다. 이후 지금까지 여러 나라를 오갔다. 하지만 그 어떤 좋은 곳에서도 어릴 적 여행의 벅찬 감동은 찾을 수 없었다. 상황이 변한 탓일 터다. 헌데 퇴사 후, 파리에서 지내는 요즘 그런 기억들과 비슷한 감정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좀 더 보태자면 그 당시 그 기억 어딘가와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을 것 같다는 착각도 든다. 더불어 이런 이유로 이곳, 파리에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탄생했는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까지 해본다.



    영화 ‘미드나잇 파리’에 등장한 곳들을 만나다



    파리 곳곳에서 만난 영화 <미드나잇 파리>에 나왔던 레스토랑 폴리도르(Polidor)와 5구 카르티에 라탱 지구에서 찾은 헤밍웨이가 살던 집, 그리고 시인 폴 베를렌의 집이었고 헤밍웨이를 비롯한 다양한 명사들이 즐겨 찾던 레스토랑 라 메종 드 베를렌(la maison de Verlaine).



    6구 생제르망 데프레에 위치한 레스토랑 르 프로코프(Le procope). 나폴레옹이 식사 값으로 모자를 놓고 갔다는 이야기를 가진 곳으로 약 330여년의 역사를 지녔다. 랭보, 루소, 볼테르 등의 유명인이 단골이었다고.



    나를 사로잡은 파리 5구와 6구     

    서울에서 하루 2000보 내외를 걷던 나는 요즘 최소 12000보 많을 때는 2만보를 걷는다. 가끔 대중 교통도 이용하지만 주로 그냥 걷는다. 지금은 파리에는 다양한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는 중이다. 파리 장식 미술관에서는 디자이너 뮤수 디올을 회고전, 그랑 팔레와 쁘띠 팔레 미술관에서는 고갱과 에드가 드가, 퐁피듀에서는 데이비드 호크니 등. 이름만으로도 혹한 대가들이다. 그런데 요즘 난 그런 전시보다 거리 곳곳의 풍경을 보는게 좋다. 이를테면 길 이름을 떠올리며 각각의 길을 걷거나 혹은 레스토랑 입구에 붙은 스티커의 개수와 종류를 세어 본다거나 카페 이곳 저곳을 돌며 내 입맛에 맞는 커피를 찾는 식이다. 물론 그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재미있는 길 찾기! 주로 5구과 6구에 포진되어 있는데 이는 총 20구역으로 나눠진 파리에서 이 지역이 가장 파리스러운 지역이라는 현지인의 말의 영향도 없진 않다.


    일요일 아침, 퐁피듀에 데이비드 호크니 특별전을 보러 갔다가 끝없이 이어진 길을 보고 과감히 발길을 돌렸다. 쭉 안쪽으로 보이는 빨간 다리 아래부터 시작 줄이다. 호크니의 인기란!




    내가 좋아하는 길들. 파리의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시장 골목을 구경하고 싶다면 5구의 무프타르 거리와 14구의 다게르 거리를 추천한다. 오른쪽 사진은 무프타르 거리의 치즈, 생선, 와인 가게 모습(107번지 주변의 가게들을 추천한다.)



    파리 거리의 또 다른 즐거움, 벼룩시장



    오래된 도시 파리에서 만나는 즐거움, 벼룩시장. 장이 서는 일정은 미슐랭 가이드가 발간한 파리 지도 실려있다. 더불어 전세계 관광객이 찾는 도시답게 파리에는 이색적인 투어 프로그램이 가득하다. 클래식 오토바이를 타고 즐기는 레트로 투어www.retrotours.com, 빈티지 자동차를 타고 곳곳을 누비는 투씨브이파리투어2cvparistour.com 그리고 뉴유럽www.neweurope.eu에서는 유럽의 각 도시별 투어는 물론이고 매일 무료 투어 프로그램도 진행하니 참고하길.



    파리 피플 지도

    몇 년 전 디자이너 질 스튜어트와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녀를 기다리던 중 그녀의 남편이자 매니저인 남자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말했다. 자신의 아내야말로 뉴욕을 가장 잘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이유인즉 마이클 코어스와 도나 카렌은 롱 아일랜드, 마크 제이콥스는 브롱스 출신이지만 질 스튜어트는 맨하탄에서 태어나고 자라, 그곳의 정기를 받은 진짜 뉴요커라는 것. 참 유난스러운 구분이라 생각했다. 헌데 파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흔히 파리지앵, 파리지엔느로 부르는 파리 사람들은 실상 파리 20구 안에 거주하는 이들이다. 파리 방리유(banlieu)라 부르는 파리 주변지역에 사는 이들은 그냥 프랑스 사람인 프랑세 혹은 프랑세즈다. 마치 우리가 강남 아이, 서울 사람, 경기도민으로 나누듯, 이네들도 나누고 따진다.

    한편, 서울에 비해 한없이 작은 파리인데 구역마다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1구과 2구, 8구, 9구는 루브르부터 샹제리제, 오페라 등 누구나 아는 관광지, 3구와 4구는 아기자기한 마레 지구, 5구는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그 이상부터 파리에 살아온 이들이 살고, 11구는 보보족이라 부르는 신흥 부자면서 보헤미안 마인드를 가진 이들의 거주지, 13구와 15구는 차이나 타운과 한인 타운, 16구는 부자 동네다.


    6구에 위치한 룩상부르크 공원의 주말 아침. 어린이들은 공원 중앙에 위치한 연못에 나무배를 띄우고 논다.



    공원 근처에 위치한 100년도 더 된 내가 사는 아파트. 닳고 닳은 나무 계단에서 추측되 듯 오래된 건물이다. 그런데 현지인 친구는 파리에서 100년 정도된 건물은 신축에 속한다고. 



    파리 거리에서 발견한 맛있는 그곳   

    길을 걷다 보면 예상 밖의 수확을 얻게 된다. 커피를 무척 좋아하는 나는 카페 이곳 저곳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카페 리차드’라는 공통된 단어를 찾았다. 커피잔이며 설탕에서. 그러다 몽마르쉐 백화점 뒷길에서 카페 리차드를 발견했다. 알고 보니 이는 유명한 커피 공급업자의 브랜드로 커피를 아는 이들 사이에서는 프리미엄 커피로 유명하다. 카페 리차드는 원두, 그릇, 설탕, 캔디 등 커피에 관한 모든 것을 파는 곳이었다. (호텔 관련 업계 지인의 말에 따르면 장충동에 있는 ‘S’호텔 로비라운지에서 이 원두를 쓴다고.) 에스프레소 커피에 크림이 살짝 더해진 2.8유로 누와젯(Noirsette)은 정말 최고다.

    그 밖에도 왠지 길이 긴 것 같아보는 빵집 앞에는 바게트 그랑프리, 에클레어 그랑프리 등 문구가 붙어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 맛? 파리의 빵은 웬만하면 다 맛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에비뉴 드 로페라(Av. de l’opera) 근처에는 한국과 일본 음식점이 대거 모여있어 한국 음식이 그리울 때면 그곳에 가면 된다. 한국 슈퍼마켓인 K마트와 ACE 마트에는 없는게 없다. 가격은 우리나라 편의점 수준(신라면 컵이 1.08유로, 햇반이 1.80유로, 깻잎 통조림 2.55유로 정도). 속된 얘기지만 세상 어디서든 돈만 있으면 문제될게 전혀 없어 보인다. 더불어 이런 저런 창업 아이템이 머릿속을 스치는 중. 파리는 이렇게 상상력을 키워주는 도시인가 보다.


    리차드의 커피들(위)과 6구 세르슈 미디(Cherche midi) 거리에 위치한 카페 리차드의 모습과 카페 누와젯.



    쁘띠 데주네(Petit Dejeuner)라고 부르는 프랑스식 아침 식사. 사진 오른쪽 하단은 보통 카페에서 8~10유로에 파는 커피, 주스, 빵로 이뤄진 세트. 왼쪽 달걀 사진은 반숙 계란에 빵을 꼭 찍어먹는 외프 아 라 코크(oeuf a la caque).



    레스토랑 외관에 붙은 재미난 스티커들.



    그랑프리를 자랑하는 빵집과 과자점을 찾아 맛보는 이곳의 재미



    To be continued…



    노블레스 패션 디렉터로 일하다 14년 회사생활을 접고 얼마 전 훌쩍 파리로 떠났다. 파리에서 머무는 99일 간의 이야기를 전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