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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오하우에서 보낸 168시간

에디터들의 여행기 3탄. 잦은 헛웃음으로 실없음의 덕목을 충만케 한 하와이 오아후에서의 7일.::하와이,오하우,채은미,여행,시티가이드,엘르,elle.co.kr::

프로필 by ELLE 2016.08.04

features editor CHAE EUN MI

바쁘게 둘러봐야 할 것 투성인 곳과 널브러져도 좋은 환경 사이의 여행을 선호한다. 스스로의 여행도, 남의 호흡으로 휘둘리는 여행도 기꺼이 즐기는 이유는 비교적 좋은 것만 혹은 좋은 쪽으로만 기억하려는 데 있다.



‘서프잭 호텔 & 스윔 클럽’의 이색 수영장과 느낌 있는 선베드.




인기 레스토랑 ‘피그 앤 레이디’의 오너 셰프 알렉스 레와 직접 맛본 야채 누들 수프.




‘파우 와우 하와이’의 공동 디렉터 카메아 하달.



오아후 섬의 킹 카마헤메하 100주년 기념 퍼레이드에서 만난 파인애플 맨.



하늘에 떠 있는 드넓은 테라스를 가진 포시즌스 리조트 오하우의 펜트하우스 스위트룸.




그런 여행지가 좋다. 눌러 살아보면 어떨까 싶은. 그런데 하와이는 예외다.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미쁜 기분이라서. 19세기부터 아시아와 유럽, 원주민의 문화가 어우러진 이 미국의 50번째 주는 닳고 닳은 관광지가 된 지 오래된 것과 무관하게 선량한 에너지로 가득해서 내 일상의 고충과 불만, 뾰로통함이 절로 정화되는 곳이다. 머무는 동안 ‘전에 없던 상냥함도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아마 그곳이 하와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새로운 오아후를 발견한 반가움도 한몫했다. 더욱 하와이다워진 오아후는 젊은 하와이언들의 노력으로 빚어낸 건축, 디자인, 패션, 푸드, 스트리트 문화 등에서 두드러졌다.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길이었다. 호놀룰루 ‘라나라네 스튜디오(Lana Lane Studios)’ 인근에 조성된 ‘파우 와우 하와이(Pow! Wow! Hawaii)’의 스트리트 아트는 더 이상 동네 곳곳에 몰래 휘갈긴 불법 그래피티 아트가 아니었다. 지역 주민들이 건물 외벽을 내어주고 국내외 아티스트들이 감성을 채운 거대한 길거리 캔버스였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과 환상적인 풍경, 상상력 가득한 피사체들로 채워진 거리를 성지 순례하듯 거닐었다. 무분별한 컬러 스프레이로 어질러진 도시의 고충을 아티스틱하게 해소시킨 동시에 아티스트들의 설자리를 채운 ‘파우 와우 하와이’의 공동 디렉터 카메아 하달(Kamea Hadar)은 기특하게도 이 프로젝트를 하와이를 넘어 미국 서부, 홍콩, 일본, 캘리포니아 롱비치, 대만 등지의 아트 페스티벌로 확장하고 있었다. 스트리트 아트와 아티스트를 수용하는 오픈 마인드에서 하와이다움을 발견한 것과는 달리 하와이의 상징을 재발견한 건 호놀룰루 다운타운에 있는 로컬 부티크 ‘알로아웨어 (Alohawear)’에서였다. 개인적으로 기념품 숍이나 월마트에서 판매하는 하와이언 셔츠의 매력도 인정하는 편이지만, 집으로 돌아가 이 셔츠를 펼쳤을 때의 이질감은 피하기 어렵다는 데 다들 동의할 것이다. 결국 이들 셔츠는 입을 일이 없어진다. 그런데 이 숍의 오너 로베르타 오크스(Roberta Oaks)가 디자인한 채도 높은 보태니컬 프린트의 하와이언 셔츠는 우리들의 도시에서도 적용 가능한 스타일리시한 패션 아이템으로 변모해 있었다(전통적인 하와이언 셔츠를 선호한다면 하와이언의 보물창고라 해도 과언이 아닌 앤티크 숍 ‘틴 캔 마일맨(Tin Can Mailman)’의 빈티지 아이템을 들러볼 것을 권한다). 이처럼 하와이의 상징을 스마트하게 녹여 넣으면서 하와이 색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모던한 공간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서프잭 호텔 & 스윔 클럽(Surfjack Hotel & Swim Club)’이다. 라이카이 비치 인근에 자리한 1960년대 건축물을 레너베이션해 객실과 수영장, 레스토랑과 로컬 디자이너의 패션 숍으로 변모시킨 이곳은 진심으로 머물고 싶고, 쉬고 싶고, 즐겨 먹고 싶은 공간이었다. 고기잡이 망을 재해석한 조명이나 전통 패브릭을 모던하게 디자인한 객실에선 한국 전통 아이템 중에 새롭게 비틀어볼 아이템이 무엇일지 슬쩍 떠올려보기도 했다. 1층에 있는 레스토랑 마히나 앤 선스(Mahina & Sun’s)에서 로컬 식재료로 만든 황돔구이와 새콤달콤한 소스가 곁들여진 문어 요리를 맛볼 때 ‘Broke Da Mout’라는 말을 배웠다. ‘Broke My Mouth’의 하와이 사투리로 ‘아주 맛있다’는 뜻이다. 이런 ‘하와이 환태평양 요리’ 배경을 살펴보면 하와이 농장 이주민들, 즉 한국과 일본, 베트남, 중국 등지의 아시아인들의 요리 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이 자국에서 챙겨온 전통 양념들과 하와이언 식재료의 만남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이국적인 하와이 맛으로 자리 잡았고, 지금도 레서피들은 진화되고 있다. ‘Broke Da Mout’의 궤를 잇는 곳으로 소개하고 싶은 차이나타운의 피그 앤 레이디(The Pig & Lady)는 오너 셰프 알렉스 레(Alex Le)가 베트남 요리에서 영감받은 30가지 이상의 메뉴를 선보이는 곳이다. 특이한 것은 각각의 요리가 적어도 세 가지 이상의 맛을 가졌다는 거다. 내가 하와이에서 맛본 가장 인상적이었던 메뉴 역시 이곳의 채식주의자를 위한 야채 수프였다. 굳이 맛을 표현하자면 ‘별천지’. 국물 한 스푼으로 적신 입 안의 혀가 낼름낼름 갖가지 맛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게 만든다고 할까. 이런 음식에의 호감은 하와이에서 다채롭게 변주되는 칵테일 메뉴로 이어져 몽키포드 키친(Monkeypod Kitchen)의 하우스 김치로 토핑한 ‘블러디 메리’, 티키스 그릴 앤 바(Tikis Grill & Bar)에서 직접 고른 훌라걸 머그잔에 서비스된 ‘마이타이’로 다시 떠올려도 입맛 다실 만한 음식과 음료의 경험도 잔뜩 업어왔다. 고백하자면, 이번 여행은 하와이언항공의 엑스트라 컴포트 좌석을 처음 경험해 본 기내 여행이기도 했다. 이코노미 클래스에 비해 5인치가량 넓은 좌석도 제법 편했지만, 그보다 컴포트 좌석이 자리한 존이 맘에 들었다. 번잡한 좌석과 떨어져 있는 섬 같은 공간이라는 점이 하와이와 닮아 있었다. 기내 여행의 백미는 ‘기내 안전수칙 영상’이었다. 이 ‘쓸고퀄’의 영상은 하와이 곳곳을 비추는 풍광과 하와이에 사는 갖가지 인간군상, 기내 안전 멘트가 위트 있게 버무려져 눈길을 사로잡았다. 여행이 다 그렇지만 기내 안전수칙 영상에 사로잡혀 다시 하와이로 떠날 날을 기대하게 될지는 몰랐다.

Credit

  • editor 채은미
  • digital designer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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