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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다운타운으로 간다

뉴욕 맨해튼, 매디슨애버뉴에 있던 휘트니뮤지엄이 다운타운으로 이사했다. 대담무쌍한 새 건물은 그 자체가 하나의 컨템퍼러리아트다.::뉴욕,맨해튼,시티가이드,휘트니뮤지엄,다운타운,데코,엘르데코,엘르,elle.co.kr::

프로필 by ELLE 2015.11.06

허드슨 강을 마주보는 면에서의 미술관 외관은 계단 형태로 층마다 배치한 발코니를 볼 수 있다.






하이테크 건축의 특징을 드러낸 노출형 계단. 어떤 자리에서든 뉴욕의 다운타운을 볼 수 있어 전망대 같은 개념으로 동선을 한정하지 않았다.






단한개의 기둥도 없이 완전히 뚫린 5층 전시공간.






강철패널을 댄 외벽의 창틀의 복잡함이 대조를 이룬다.




뉴욕에는 현재 80여 개의 뮤지엄이 있다. 런던이나 파리에 비해 훨씬 좁은 맨해튼은 지하철 패스 한 장만 들고도 구석구석을 누비며 크고 작은 미술관과 갤러리를 볼 수 있는 도시다. 그중에서도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Metropolitan Museum of Art)과 구겐하임(Guggenheim Museum) 외에도 뉴요커들이 사랑하는 프릭 컬렉션(The Frick Collection), 노이에 갤러리(Neue Gallerie)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업타운은 예술가와 그림애호가, 딜러, 컬렉터 모두를 만족시키는 뉴욕 미술의 구심점이다. 이 업타운을 미술의 성지로 만든 장본인은 아마도 휘트니 뮤지엄일 것이다. 20세기 미국 미술 그중에서도 컨템퍼러리 아트를 초고속으로 성장시킨 휘트니에게 미국 미술계는 빚을 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도 재벌 반더빌트 가문의 휘트니 여사는 당시 주류였던 유럽 미술의 걸작 대신 미국 신진 예술가들의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에 주목했다. 영향력 있는 컬렉터로 활동하며 사들였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기증하려다 실패하자, 통 큰 휘트니는 자신의 이름을 딴 뮤지엄을 설립해 버리기로 했다. 권위적이고 변화를 썩 좋아하지 않는 미술계에 파격적인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나아가 2년에 한 번씩 휘트니 비엔날레까지 운영하며 젊은 작가들을 꾸준히 지원했다. 에드워드 호퍼, 장 미셸 바스키아 등은 휘트니가 스타로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보수적인 미술계가 보란 듯이 매번 더 젊고 더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을 찾아내는 데 몰두했던 휘트니가 더 젊은 지역을 찾아 이사한다는 소식은 모든 뉴요커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빅 뉴스 중 하나였다. 7년간의 준비와 공사 기간을 거쳐 지난 5월, 새로운 휘트니 뮤지엄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다운타운의 미트패킹 디스트릭트. 사람들은 다운타운에서 시작한 제2막의 휘트니 뮤지엄에 환호했다. 소규모의 화려한 부티크 호텔과 유명 디자이너들의 숍, 잘나가는 레스토랑과 블링블링한 바가 밀집한 미트패킹의 갱스부르트 스트리트에 강철과 통유리로 마감한 9층 높이의 비대칭형 건물이 주는 분위기가 휘트니의 ‘정신’과 굉장히 잘 맞아떨어지는 풍경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누가 만들었냐고? 건축계의 살아 있는 전설, 이탈리아 출신의 렌조 피아노(Renzo Piano)다. 그는 일명 하이테크 건축, 내부 구조 등이 노출돼 얼핏 거대한 기계처럼 보이기도 하는 건축물의 대가다. 피아노가 30대에 설계한 퐁피두 센터가 하이테크 건축의 파격적인 시작이었다면, 70대가 된 그가 다시 지은 휘트니 뮤지엄은 친환경 공법 등 최첨단 기술 중에서도 주위 환경과 더욱 긴밀하게 어우러지는 건축으로 진화한 종착역에 가깝다.


완공 후 진행했던 공식 인터뷰에서 그는 가장 염두에 둔 부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건 그냥 새 미술관을 짓는 일이 아닙니다. 휘트니라는 상징성과 역사를 새 건물에 녹아들게 하는 게 더 중요했지요.  미국 예술 특유의 힘과 도전 정신을 표현하려면 충분히 대담해야 하고, 더욱 더 대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퐁피두 센터 이후에도 거의 50년에 걸쳐 20여 개의 뮤지엄을 지었다. 뮤지엄 건축에 이보다 더 뛰어난 프로페셔널이 있을까? 그럼에도 그는 휘트니 프로젝트가 매우 까다로웠다고 말한다. 렌초 피아노가 가장 공을 들인 공간은 전시공간에 앞서 1층 로비였다. 600제곱미터 크기의 공간을 관람객과 그 앞을 지나는 일반 시민들을 위해 개방했는데, 예술과 보통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최소로 좁히고 싶었던 미술관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특히 최근 조성한 하이라인 파크(화물 기차가 다니던 고가도로를 폐쇄하는 대신 나무를 심어 공원으로 변신시켰다) 입구와 맞닿아 있어 주위를 거닐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들어오기 쉽다. 1층엔 기념품 숍과 대니마이어 레스토랑이 있어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거부감이 없다. 주요 작품은 5층부터 8층까지 있는 갤러리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로비 중앙의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그런데, 이 엘리베이터도 작품이다. 미국의 팝아트 작가 리처드 아트슈웨거(Richard Artschwager)가 휘트니에게 의뢰받은 작업은 그의 유작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 가장 높은 층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으로 관람하는 동선에 따라 5층 마지막 전시 층으로 내려오면 입구에 들어섬과 동시에 어떤 무심론자도 감탄사를 터뜨릴 수밖에 없다. 1700제곱미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면적에 단 한 개의 기둥도 없이 완전히 뻥 뚫린 전시장은 뉴욕 최대의 단일 전시공간이자 거대한 통창을 통해 바깥까지 시야가 퍼져나가 마치 허공에 붕 떠 있는 느낌을 준다. 동쪽으로는 아름다운 마천루의 스카이라인을, 서쪽으로는 허드슨 강을 파노라마처럼 감상할 수 있다. 5층 외에도 8층의 야외 테라스는 물론 모든 층에 야외로 통하는 휴식 공간을 만들어 답답한 화이트 큐브와는 완전히 다른 감상을 제시한다.


새 휘트니의 놀라운 건축물은 어떤 면으로 보나 ‘오픈’에 온전히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우하우스 풍의 건축가 마르셀 브루어(Marcel Breuer)가 디자인했던 예전 건물은 자연광도 차단되어 있었고 묵직하며 위압적이었다. 누군가는 난해하다 정신 나갔다고 말하기도 하는 현대미술은 사실 ‘오픈’된 마인드로 자기 방식의 해석을 내려도 좋을 작품들이 아니던가. 그러한 현대미술을 가장 자유로운 방식으로 관람하길 원하는 휘트니는 뉴욕과 자연과 사람들과 가감없이 소통하고자 한 그들의 목적을 희망했던 것보다 더 완전하게 이뤘다. 지금 열리고 있는 개관 특별전은 ‘보기 힘든 미국(America is hard to see)’이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과감한 미술관을 지어놓은 휘트니의 선택답다. 그간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는 작품을 포함해 총 400여 명 작가의 650여 점을 선보인다. 관객들의 호응? 솔직히 말하면, 거의 모든 뉴요커가 매일 찾아가는 지경이라 몇 시간씩 줄을 서야 입장할 수 있을 정도로 문전성시다. 이렇게 뜨거운 미술관은 그 대단한 뉴욕의 그 어떤 시기에도 없었다. 미술관 앞 장사진을 이룬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모습이야말로 보기 힘들었던 미국이 아닌가 싶다.


add 99 Gansevoort Street New York NY 10014

fee 일반 $22 / 학생, 경로우대 $18 (18세 미만과 휘트니뮤지엄 회원은 무료 입장)

tel +1 (212) 570-3600

url whitney.org




Credit

  • writer 이치윤
  • editor 이경은
  • photographer Zambelli Max
  • DIGITAL DESIGNER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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