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디자인은 좋은 비즈니스를 이끌어낸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좋은 디자인은 좋은 비즈니스를 이끌어낸다

딱딱한 오피스 환경을 완전히 바꿔놓은 플로렌스 놀이 100세를 맞았다. 아름다운 디자인의 대모로 불리는 놀에게 존경을 표하며, 그녀의 발자국을 좇았다

ELLE BY ELLE 2017.12.16

플로렌스 놀. 결혼 전 이름은 플로렌스 슈스트였던 그녀를 가까운 사람들은 ‘슈’라고 불렀다.



‘놀 플래닝 유닛’에 따른 인테리어. 가구뿐 아니라 가구가 놓여 사람들이 생활하게 될 환경을 고려했다.



최적의 인테리어를 찾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녹아 있는 플로렌스 놀의 오리지널 아이디어 보드.



당시 광고 시장을 휩쓴 ‘웜 체어’ 광고. 플로렌스 놀은 재능 있는 그래픽 아티스트를 전격 채용해 새로운 스타일의 광고를 선보였다.



패브릭 조각을 비율에 맞게 콜라주해 실제에 가깝게 연출한 스케치.



플로렌스 놀을 통해 혁명적으로 바뀐 쇼룸 풍경. 일상적인 오브제를 곁들여 친근한 쇼룸이 완성됐다.



플로렌스 놀과 함께한 ‘굿 디자인’의 상징적 디자이너 중 한 명인 해리 베르토이아의 ‘다이아몬드 체어’(1952).



1957년, 뉴욕에서 ‘튤립 의자’를 선보였을 때의 플로렌스 놀과 에로 사리넨.



플로렌스 놀이 기용한 스위스 출신 그래픽 디자이너 허버트 매터가 1951년에 디자인한 ‘웜 체어’ 광고.



 놀(Knoll)은 실용적이고 현대적인 오피스 가구 브랜드로 유명하다. 얼마나 실용적이고 현대적인지는 베스트셀러 ‘튤립 체어’만 봐도 알 수 있다. 1956년, 자연스런 디자인 예찬자인 에로 사리넨이 디자인한 이 의자는 봉긋하게 피어난 등받이 아래 줄기처럼 뻗은 기둥형 다리, 이름 그대로 한 송이 꽃 같은 디자인으로 의자 다리는 4개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우아하게 깨트렸다. ‘튤립 체어’는 사무실에서도, 고급 호텔에서도,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라운지에서도 볼 수 있는 스테디셀러로 거듭났다. 놀은 언제나 그랬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포근한 ‘웜(Womb) 체어’, X자 크롬 다리가 빛나는 ‘바르셀로나 체어’ 등 간결하면서도 편안한 디자인으로 어디에 둬도 불편하지 않은 가구를 만들어왔다. 그 선두에 플로렌스 놀(Florence Knoll)이 있었다.


플로렌스 놀의 디자인적 영감에는 학창 시절에 만난 인물들의 영향이 컸다. 가령 그녀는 미시간 크랜브룩 아트 아카데미에서 수학하던 1934년에 훗날 놀의 최고 파트너가 된 이들과 친구가 된다. 찰스 임스, 레이 카이저(레이 임스), 해리 베르토이아, 마리앤 스트렝겔(Marianne Strengell) 그리고 에로 사리넨 등 ‘시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불리는 이들과 말이다. 유럽 문화의 영향을 받아 진보적이던 이 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이들은 향후 플로렌스와 손잡고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디자인을 놀에서 마음껏 펼쳐보인다. 한편 일리노이 공과대학에 재학하던 1940년에는 사실상 플로렌스의 디자인 철학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과 조우한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독일 출신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다. “그는 완벽한 멘토였어요. 가장 정제된 디자인을 얻기 위해 아이디어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 가르쳐줬죠.” 당시 체득한 바우하우스 정신, 즉 ‘적은 것이 낫다(Less is More)’라는 가치관은 이후 플로렌스의 기준이자 놀의 중심인 ‘굿 디자인(Good Design)’의 전제가 된다. 어쩌면 놀은 알아도 플로렌스 놀을 아는 사람은 적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놀은 1938년에 한스 놀이 뉴욕에 혼자 설립한 회사였고, 플로렌스는 1946년에 그와 결혼하며 놀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름을 내건 가구를 남긴 것도 아니고, 1935년에 한스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재혼한 1965년까지만 놀을 이끌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플로렌스 놀을 몰라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형으로 남긴 그녀의 빛나는 업적 때문이다. 플로렌스 놀은 스스로를 공간디자이너로 규정했다. 그녀에게 공간이란 유려하게 뽐내거나 장식하는 대상이 아닌, 사람을 위해 구성돼야 하는 존재였다. 플로렌스가 놀에 만든 부서 ‘놀 플래닝 유닛(Knoll Planning Unit)’이 그녀의 사명을 증명한다. 이 부서에서는 가구뿐 아니라 가구가 놓여 사람들이 생활하는 환경을 고려해 업무를 진행했다. 덕분에 클라이언트들은 실제에 가까운 인테리어 스케치를 접할 수 있었다. “인테리어에 사용하려는 패브릭 조각을 비율에 맞게 잘라 붙이면 효과적이에요. 사람들이 가구 위치나 공간 분위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죠.” 플로렌스의 방법은 전후 개발 열기에 휩싸여 공장에서 찍어내듯 새로운 가게와 회사가 우후죽순 생겨나던 미국에서는 보기 드문 섬세함이었다. 일상에 가깝게 꾸미는 지금의 쇼룸 미장센 역시 플로렌스를 거쳐 탄생했다. 당시 브랜드 쇼룸은 가구를 일렬로 늘어놓는 게 전부였다. 마치 가구의 위용을 자랑하듯 말이다. 그러나 플로렌스는 달랐다. 그녀는 식물과 태피스트리, 액자 등 실생활 오브제와 함께 가구를 배치했다. 덕분에 근엄한 가구 전시장은 편안한 일상 풍경으로 변신했다. 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경쟁사가 앞다퉈 따라 한 것은 당연했다. 남다른 그녀의 행보는 1961년 미국건축가협회 (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에서 수여하는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금메달을 수상하는 영광으로 이어졌다. 여성이 건축업에 종사하는 일은 물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경우도 없었던 시대에 거둔 우아한 승리였다. 플로렌스는 언제나 말했다. “우리는 공간을 장식하지 않아요. 우리가 가진 재료와 기술을 시대에 맞는 디자인으로 보여주고자 합니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이죠.” 사람이 편안한 가구, 사람이 아늑한 공간,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대상. 플로렌스의 신념을 담아 놀은 사람이 하루의 절반 이상 일하는 오피스, 그 안에서 숨통을 틔워주는 가구 브랜드로서 명성을 지켜가고 있다. 플로렌스 놀이 이룬 놀의 모토 그대로. ‘좋은 디자인은 좋은 비즈니스를 이끌어낸다(Good design is good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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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사진 COURTESY OF KNOLL, INC., IMAGES FROM THE KNOLL ARCHIVES
    글 LAURENCE SALMON
    에디터 김은희
    디자인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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