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지방덩어리들
아마도 한국인과 이탈리아인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지방 사랑’인 것 같다. 그렇다. 팻(fat), 우리가 경배와 증오를 교대로 바치는 그 기름덩어리, 비계다. 우리의 삼겹살 사랑은 상상 이상이다. 오죽하면 유럽과 미국, 칠레, 멕시코 할 것 없이 돼지를 기르는 나라들은 하나같이 한국에 삼겹살을 팔아치우려고 통상 문제까지 일으킬 지경이다. 언젠가는 유럽의 한 대국에서 대규모의 삼겹살 판매단(?), 좀 점잖게 말해서 홍보사절을 파견한 적이 있었다. 나도 어쩌다 초청을 받아 모 호텔의 거대한 연회실에 갔었는데, 하여튼 삼겹살은 기억이 안 나고 홍보사절격인 ‘돼지고기 아가씨’의 미모만 생각난다. 이젠 미모의 아가씨까지 뽑아 한국에 삼겹살을 팔기 위해 보내는 거다. 그럴 만도 한 게 서양에서는 삼겹살이 좀 애물단지다(서양만 그런 게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도 마찬가지다). 베이컨을 만들고, 이탈리아식의 생삼겹살 절임, 즉 판체타를 만들고 난리를 쳐도 남는 건 삼겹살이다. 게다가 값도 X값이다. 그러니 한국인이 그걸 비싸게 사준다는 사실에 얼마나 감격하고도 남을 것이냐는 말이다. 삼겹살 아가씨 정도가 아니라 홍보군단이 몰려와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기름에 대해 좀 이율배반적인 애증을 보인다. 서양인들에게는 처치곤란인 삼겹살을 그렇게 사랑하는가 하면, 지방(脂肪)은 다이어트와 국민건강의 적으로 치부한다. 삼겹살은 곧 지방이자 기름 아닌가. 기름을 먹으면서 기름을 증오하는 생활이라. 물론 나도 그 대열에 서 있긴 하지만. 이탈리아인들 또한 우리만큼은 아니어도 지방에 대한 경계심에 빠져 있다. 엄밀히 따지면 동물성 지방이 그 대상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전통 음식은 동물성 지방 천지다. 아니, 프로슈토와 판체타, 살라미에 지방이 빠지면 무슨 맛이겠는가. 그 하얀색 비계는 마약 같은 유혹을 보낸다. 소금에 절인 지방에 한번 맛 들이면 헤어날 수 없다. 빌 버포드가 <앗 뜨거워>에서 토스카나의 푸주한 다리오 체키니 가게의 정경을 묘사한 장면은 정말 그네들의 지방 사랑의 결정판을 보여준다. 지옥의 클래식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순수한 소금 절임 돼지지방인 라르도(lardo)를 먹는 일군의 이탈리아인들이 나온다. 마치 좀비처럼 라르도의 발효된 감칠맛에 미칠 듯이 매달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한 편의 광시곡이다. 빌이 좀 소설적으로 각색했겠지만 틀린 말은 절대 아니다. 아니, 여러분이라면 딱딱한 시골 빵에 오직 라르도(프로슈토와는 또 다른, 엷고 가느다란 분홍색의 살점이 아주 약간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소금에 푹 절여진 투명한 흰색의 생 기름 덩어리)를 넣어서 즐겁게 먹을 수 있겠는가. 순수하게 기름과 소금이 만나 절정의 ‘제3의 맛’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그 맛은 중독성이 강하다.
‘지방’의 절정을 맛보다
토스카나는 언제나 이탈리아 최고의 여행지다. 심지어 외국인들은 ‘토스카나=이탈리아’라고 생각한다. 한국인들도 그럴 것이다. 음식조차 토스카나를 표방한다. 한국의 많은 이탤리언 레스토랑이 토스카나식이라고 말한다. 미디어의 기자들은 새로 생긴 이탤리언 레스토랑을 다녀오면 꼭 이렇게 쓴다. “마치 토스카나 시골의 서민식당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음식은 토스카나식을 기본으로….” 유감스럽게도 그 어떤 식당도, 인테리어는 비슷하게 해놓았을지 모르지만, 음식은 토스카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코테키노와 살라미, 라르도와 야생 버섯, 진짜 올리브가 없는 토스카나 식당은 상상도 할 수 없으니까. 토스카나 음식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토스카나가 넓기도 넓은데다가 산과 들,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방’은 토스카나 안에서 다 수렴된다. 소금에 절여서 그대로 썰어 먹는 라르도, 그걸 녹여서 정제한 스트루토를 먹을 줄 안다면 당신은 토스카나 사람이 될 준비가 된 것이다. 라르도는 그렇다 치고 스트루토는 또 뭐냔 말인가. 토스카나의 와인 산지는 상상도 못하게 넓고 다양하다. 어마어마한 값의 슈퍼 투스칸이 나오는 서부 해안지대의 볼게리와 마렘마, 그 오른쪽으로 몬탈치노, 다시 그 오른쪽으로 가면 몬테풀치아노, 거기에 너무도 유명한 키안티까지 토스카나 곳곳에 최고의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글로 동네 이름을 늘어놓아봐야 소용없다는 건 나도 잘 안다.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슬로베니아, 유고, 마케도니아, 크로아티아… 이런 나라들이 도대체 어디 붙어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회가 되면 구글 지도라도 보여드리면서 설명하고 싶을 뿐이다. 아무튼 저 드넓은 토스카나 지역을 돌면서 ‘지방’ 맛을 보게 되는 건 손쉬운 일이다. 키안티의 한 마을에 들렀던 나는 스트루토의 세례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첫 번째 주문한 요리는 브루스케타였는데, 설마 그 기름이 나올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브루스케타라면 으레 예쁘장하게 자른 빵에 토마토와 바질이 올라가고, 기껏해야 닭 간이나 토끼 간 페이스트를 발라 내놓을 줄 알았는데, 이건 상상 초월이었다. 그냥 시커멓고 입천장이 훌렁 벗겨질 것처럼 딱딱한 빵을 마구 자른 후 거기에 정체불명의 하얀색 기름이 가득 덮어져 나왔다. 마치 서설처럼 눈부시게 하얗고 설탕크림을 뿌려 놓은 듯이 투명하게 반짝였다. 한 입 썰어서 넣자 기름이 입안의 온기에 녹으면서 감칠맛을 뿜어냈다. 느끼할 것 같다고? 천만의 말씀. 소금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넣지 않았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달고 짠맛이 조화를 이루면서 입안의 구석구석까지 넓고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거친 빵조각을 삼키자 뱃속이 따뜻해졌다. 한 조각의 스트루토 브루스케타의 칼로리는 얼마라고? 그런 건 따지고 싶지 않았다. 스트루토는 삼켜지고 나서도 여전히 기름 특유의 온화한 기운을 입 안에 남기고 있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두 번째 브루스케타를 향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중이었다. 그런 생각은 곧 미칠 듯한 갈망으로 바뀌었다. 두툼하고 꺼칠꺼칠한 빵으로 만든, 솜씨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어 보이는 그 브루스케타 접시는 그렇게 홀랑 내 입으로 들어갔다. 당신이 토스카나 시골의 다 쓰러져 갈 것 같은 돌집에 있는 식당에서 스트루토를 주문할 것을 제안 받았다면 그게 뭐냐고 묻지 말라. 그냥 그 지방의 샘으로 풍덩 빠져 보시라고밖에 말하지 못하겠다. 지방, 즉 기름이 이토록 향기로운 존재였는지, 왜 사람들이 돼지를 그토록 애지중지 기르는지 알게 해줄 것이다. 아, 입가에 번들거리는 스트루토 기름은 좀 닦고 다음 요리를 기다리시길. 돼지 등에서 발라낸 기름이 잔뜩 들어간 살라미가 나올 차례니까. 미안하지만 당신이 버섯을 싫어한다면 그건 순전히 버섯 잘못이지 당신 탓이 아니다. 버섯이 못나서 그런 것이다. 새송이니 팽이니-조직감 외에 이걸 버섯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또 뭐냐. 향기 없는 버섯은 버섯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것 아닌가-하는 버섯 때문일 것이다. 값싸고 영양 많으며 언제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버섯이지만 송이나 능이, 싸리버섯 주변에 녀석들이 어슬렁거리지 않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가을은 야생 버섯의 천국이 된다. 특히 산악지역이 발달한 토스카나의 가을은 동네 구멍가게조차 낙엽 부엽토가 마구 묻어 있는 야생 버섯으로 가득 찬다. ‘딸 사람이 없어서’ 버섯이 썩고 있는 한국의 처지에서는 부럽기만 한 일이지만. 그 버섯으로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 건 토스카나 사람의 의무다. 순수한 돼지기름의 스트루토 브루스케타를 먹고 나면 버섯 파스타를 먹어야 한다. ‘피치’라고 부르는 토스카나의 전통 파스타다. 토스카나는 원래 낙농이 쉽지 않아서 유제품보다 돼지기름을 많이 먹었다. 또 파스타에 달걀을 넣지 않고 반죽하는 걸 즐겼다. 이탈리아의 생면은 으레 달걀을 넣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피치가 바로 그렇다. 마치 흰색의 우동을 보는 것 같은 피치는 굵고 단단하게 반죽한다. 달걀의 감칠맛은 없지만, 거칠거칠한 밀가루의 식감과 구수한 향이 일품이다. 여기에 야생 버섯으로 만든 수고(소스)를 얹어 먹으면 한동안 입을 다물게 된다. 오래된 광물질의 냄새, 낙엽송이 발효된 구질구질하면서 향기로운 흙냄새를 풍긴다. 버섯 소스는 은근히 달고, 흙 비린내가 식욕을 불러온다. 피치는 맞춤하게 굵어서 목을 통과하면서 짜릿한 자극을 남긴다. 여기에 싸구려 토스카나 키안티 와인 한 잔을 넘겨보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