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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0. SUN

IN FACE 이건 북유럽 스타일이 아니야

디자인계의 트렌드로 손꼽은 '네오 에센셜리스트'와 우리가 애정하는 '북유럽 스타일'의 상관관계를 비틀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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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오 에센셜리스트(Neo?Essentialist)’. 디자인 트렌드를 분석하는 나에게 누군가 하반기 디자인 트렌드를 물어와 이 단어를 언급했다. ‘네오 재패니즈’처럼 다시금 간결한 스타일이 회자되고 있는 시점이지만 이전의 미니멀리스트처럼 단순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취향을 확실히 드러낸 그러나 군더더기는 뺀 스타일이 강세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네오 에센셜리스트는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그들은 남을 의식하거나 타인의 취향에 맞춰가는 것보다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도를 한다. 최근 유행처럼 출시되고 있는 데이베드는 디자인뿐 아니라 집 안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찾고자 하는 가구라는 점에서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지난여름, 개인적인 휴가와 <엘르 데코> 취재를 위해 덴마크와 스웨덴, 핀란드의 크고 작은 도시를 여러 번 방문하면서 문득 한국인이 사랑하는 ‘북유럽 스타일’이 과연 그 ‘스타일’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됐다. 우리가 생각하는 북유럽 스타일은 그런 게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다. 북유럽의 대표적인 브랜드 루이스 폴센, 크바드랏, 이딸라의 본사와 팩토리, 알바 알토 하우스를 비롯한 거장 디자이너의 집과 뮤지엄, 젊은 한국 디자이너들의 작업실, 다양한 빈티지 숍들을 둘러보고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행운을 누린 덕분이다.


    온통 화이트로 칠해진 벽에 심플한 디자인 가구들, 가령 루이스 폴센의 서스펜션 조명이 거미줄처럼 식탁 위로 내려와 있고,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스툴이 한켠에 놓여 있으며, 이딸라의 식기들과 헤이의 소품으로 완성된 공간. 북유럽 스타일 하면 떠오르는 대략의 풍경이다. 물론 선호하는 브랜드와 디자인, 오브제의 종류 등은 달라지겠지만 이런 스타일링 공식이 북유럽 스타일로 인식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모던 디자인의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알바 알토는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행복을 지탱하고 키울 수 있는 가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렇게 해서 ‘아르텍’이란 브랜드가 탄생했다. 그가 만든 가구들은 기능성을 가진 조각 작품 같았다. 오랜 시간 북유럽 사람들의 공간에 큰 울림을 준 그는 나에게 다른 의미로 울림을 줬는데 바로 자신의 거실을 통해서다. 지금은 뮤지엄이 된 알토 부부의 집 거실엔 지브라 패턴의 패브릭이 씌워진 암체어와 베니스에서 구입한 화려한 장식품과 기교 넘치는 의자들이 그의 모던한 가구들과 공존하고 있었다. 지극히 미니멀한 가구 디자인을 분출해 낸 그의 마음엔 얼룩말 무늬와 베니스의 화려함을 선호하는 취향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나는 부부의 숨겨진 취향을 찾는 데 열중했다. 결론적으로 그곳은 우리가 알고 있던 북유럽 스타일의 교과서적 해석과는 달리 전혀 다른 디자인이 어우러져 스파크를 내는 공간이었다.


    이딸라의 ‘티마(Teema)’ 컬렉션을 디자인한 카이 프랭크는 비싼 물건을 살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 생각엔 결코 저렴하지 않은) 이딸라를 만들었다. 북유럽 국가들이 지금에서야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혹은 부자 나라
    1, 2위의 서열을 다투고 있지만 과거 이곳은 남쪽의 다른 나라보다 자원이나 식량이 턱없이 부족한 대륙이었다. 그리고 그는 당시 돈이 많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타임리스 디자인, 즉 대를 이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선보였다. 이 제품이 트렌디하면서도 트렌드의 속성을 비켜가는 디자인이라는 것에는 정말이지 이견이 없다. 부모님이 사용하던 어마무시하게 큰 가죽 소파나 촌스런 마호가니 찬장을 물려주시겠다면 손사래 치겠지만 이런 제품이라면 물려받을 의사가 충분할 것이다. 타임리스 디자인과 완성도 높은 품질에 대한 의지는 인기를 끌고 있는 북유럽 브랜드의 공통적인 가치인 것 같다. “우린 매 시즌 새로운 걸 내놓기보다 가진 걸 좀 더 심도 깊고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요. 아주 아름답고 정교한 제품 말이에요.” “매해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는 것보다 기존 모델을 하나하나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게 바로 루이스 풀센의 핵심 작업이에요.” 덴마크에서 만난 크바드랏의 CEO 앤더스 비리엘, 루이스 폴센의 디자인 디렉터 라스무스 마크홀트는 약속이나 한 듯 브랜드 모토를 같은 화법으로 언급했다. 그들은 한 제품을 오래 사용하도록 유도한다. 아름다운 빈티지 컬렉션이 탄생한 기저에 이들 같은 브랜드의 가치가 확립돼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북유럽 스타일’은 ‘스타일’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북유럽 디자인은, 이를테면 삶의 철학이다. 자신의 취향을 정말 ‘취향껏’ 버무릴 줄 아는 자신감으로 공간을 디자인하되 오래도록 함께할 제품을 선택하는 소신 말이다. 그리고 그 철학을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네오 에센셜리스트라 할 수 있겠다.


    내가 네오 에센셜리스트인지 생각해 보면 고개를 끄덕일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내가 사는 파리의 스튜디오는 1층의 층고 높은 상점과 목공소였던 뒤 공간을 터서 만든 집이다. 집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부모님은 무엇이든 많은 이곳을 고물상 같다고 하고, 어떤 이는 맥시멀리스트의 공간 같다는 의견을, 또 다른 이는 “세상 정신 없는 집”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다만 그들의 공통된 결론은 ‘나와 내 남편 같다’는 것이다. 그게 칭찬인지 비난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우리의 취향이 확실히 보인다는 얘기로는 들린다. 나와 남편은 PP 뫼블러의 암체어와 이딸라의 티마 컬렉션 등을 즐겨 사용하는 북유럽 디자인 애호가인 동시에 길거리에 버려진 재미있는 제품들을 주워와야 직성이 풀리는 고물상 주인 같으며 ‘앞으로 함께할 시간’을 기준으로 고심하며 쇼핑 목록을 써내려가는 맥시멀리스트(남편은 제외하고), 그러면서 또 정신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 의미로 나는 우리 집을 제법 북유럽스러운 곳이라 생각하며 산다. 그리고 우리를 만족시키는 이 어지러운 취향이 육체적, 정신적 행복을 지탱하고 키울 수 있게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