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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9. MON

TIME GOES BY TOO SLOW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시간이 멈춘 공간

자신들이 만드는 17세기 프랑스 도자기와 같은 시기에 지어진 나이 지긋한 건물에서 낡은 물건들과 살아가는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공동대표 베누아와 이반의 집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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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반 페리콜리의 스튜디오. 1600년대 건축 당시의 창틀과 토메트(Tomette) 타일로 된 바닥 그대로의 공간. 가구는 모두 빈티지 마켓에서, 헌팅 트로피는 미국 벼룩시장에서 구입했다. 왼쪽 테이블 위에는 이번 시즌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실버 플래틴 코팅 도자기 제품을 화분으로 사용하고 있다.



    베누아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스튜디오. 드라마틱한 빈티지 회벽 공간에 빈티지 테이블과 의자, 가구들이 놓여 있다. 빈티지 오브제들의 대부분은 이탈리아에서 구입했다.



    베누아가 집의 구성 요소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벽난로 위엔 세계 각국의 빈티지 오브제들이 놓여 있다. 침실로 올라가는 계단 옆의 그림은 자신이 직접 그린 것. 계단 왼쪽 거울은 길에서 주워왔으며, 모든 가구들은 시대가 불분명한 빈티지 제품들이다.



    이반의 펫 미셰트와 피핀.



    이반과 베누아는 다른 층에 살지만 진한 초록색 문 앞에는 같은 하트 모양의 문패가 달려 있다.



    두 사람의 아틀리에이자 오피스 공간. 벽에 걸린 그림은 이반의 작품이다. 길에서 주워온 오래된 문짝을 테이블 상판으로 사용해 만든 테이블 주위로 벼룩시장에서 산 의자들을 놓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제품들은 모두 아스티에 드 빌라트. 뒤쪽에 지인들을 위한 게스트 룸이 있다.



    화가였던 베누아의 아버지가 그린 대형 그림 앞에 선 이반과 베누아 그리고 강아지 아브릴.



    군용 수납함 위에 이반이 취향을 고스란히 담은 빈티지 컬렉션이 전시돼 있다. 거울 속에 보이는 그림은 자신이 직접 그렸다.



    베누아의 부엌. 장식장 안에는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테이블웨어와 빈티지 접시들이 빼곡하고, 테이블 위에는 이번 시즌에 선보인 양배추 접시가 놓여 있다.



    선반 위를 장식하고 있는 건 일본과 유럽에서 사 모은 오브제들. 이반이 수집하는 다양한 빈티지 철제 박스들도 재미있다.



    베누아의 스튜디오 벽면엔 작자 미상의 오래된 그림과 조각, 직접 그린 드로잉이 빼곡히 걸려 있다.



    베누아의 책상. 여기도 어김없이 인도와 유럽에서 사 모은 작자 미상의 그림들이 걸려 있다. 책상 위에는 화구들과 몇몇 세라믹 오브제들이 정갈하게 정리돼 있다.



    베누아의 침실. 그는 페인트가 벗겨진 벽과 지붕 위로 난 오래된 창문이 최고의 매력이라고 얘기한다.



    시간을 관통하는 아름다움을 지닌 아스티에 드 빌라트(Astier de Villatte)는 한국인이 사랑해 마지않는 프랑스 태생의 도자기 브랜드다. 조금씩 생김새를 달리하지만 언제나 기품 있는 디자인을 유지하는 이곳의 테이블웨어를 사용하다 보면 이따금 만든 이들이 사는 공간과 생활양식이 궁금해진다. 이런 우리의 바람을 알았을까. 브랜드 공동대표 베누아 아스티에 드 빌라트(Benoit Astier de Villatte)와 이반 페리콜리(Ivan Pericoli)가 한 지붕 아래 따로 또 함께 사는 17세기 건물로 <엘르 데코> 코리아를 초대했다. 한적한 파리 5구,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좁은 돌담 길에 자리한 건물의 커다란 문을 열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오를 땐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진초록의 문 앞에 이르러 하트 모양의 문패를 만났을 때의 난감함이란…. 서로 다른 층에 사는 베누아와 이반은 관심사도, 기르는 동물의 성향도 다르지만 문패만은 반짝이는 ‘하트’로 통일했다. 또 하나, 공통의 취향이 가미된 살롱도 같은 건물에 있었다. 17세기 프렌치 스타일의 도자기, 아스티에 드 빌라트가 ‘사는’ 공간을 상상해 보면 가장 먼저 화려한 데커레이션으로 완성된 웅장한 공간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주인들, 특히 이반이 추구하는 공간은 이런 단편적인 상상을 무너뜨린다. “공간의 크기엔 전혀 개의치 않아요. 예전부터 제가 살고 싶었던 곳은 한켠에 침대가 놓인, 작은 주방이 딸린 아틀리에였어요. 베누아도 나도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었죠.” 10년 전, 화가의 작업실이었던 이 스튜디오를 발견한 두 사람이 이견 없이 여기에 살기로 결정한 이유는 바로 그들이 꿈꾸던 낡은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벽들과 토메트 타일 바닥 그리고 오래된 창이 있는. 이반의 아틀리에는 마치 에밀 졸라의 소설에 나오는 화가 클로드 란티에의 작업실 같다. 그의 바람대로 덩그러니 놓인 침대 하나와 작은 부엌이 있다. 거실에 놓인 소파와 데이베드는 집 앞에 버려진 물건들을 가져다 놓은 것인데, 처음엔 새것 같았지만 애묘 미셰트(Michette)와 피핀(Fifine)의 손길이 더해진 지금은 한층 역사를 가진 물건(!)이 됐다. 이름 모를 이들의 포트레이트를 수집하는 일에 열정을 가진 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과 이 컬렉션으로 벽을 채워 가고 있는 중이다. 빈티지 세라믹 오브제와 동물 그림이 그려진 스토리지 박스, 커다란 물소 헌팅 트로피 등이 눈에 띄는 이반의 스튜디오가 이국적이고 러스틱한 분위기인 데 비해 애견 아브릴(Avril)과 사는 베누아의 스튜디오는 좀 더 고전적인 느낌을 준다. 층고 높은 복층 구조인 데다 빛이 한껏 들이친 덕분에 한층 서정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화가였던 아버지를 따라 로마에 있는 메디치 빌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로마풍의 도자기나 조각품을 좋아해서 한 벽 가득 모아놓았다. 이뿐 아니라 동양적인 세라믹 조각들과 불상 등 갖가지 수집품들이 빈티지 테이블과 카페 의자들을 둘러싸고 있다. 물론 자신이 그린 그림과 함께.

     
    애초에 베누아와 이반이 이곳으로 이사한 이유는 거의 텅 빈 공간에서 그림을 그릴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빈티지 컬렉션에 대한 열정은 기존 생각을 뒤바꿔 버렸다. “우린 오래된 오브제나 가구들을 좋아하고 수집도 하지만 그게 꼭 값비싼 물건일 필요는 없어요. 구두쇠처럼 보이긴 싫지만 사실 벼룩시장에서 우리 눈길을 끄는 건 항상 값싼 것들이에요. 꼭 역사적인 가치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아름다운 그림이나 패턴이 있다든지, 물건이 살아온 세월을 그대로 보여주는 진짜 낡은 것들을 좋아하거든요. 우리 스튜디오에는 길에서 주워온 것도 엄청 많아요. 점점 길에서 좋은 물건(!)을 찾기 힘들어진다는 게 아쉬울 뿐이죠.” 너무 완벽하게 보존된 옛것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다는 이들은 사용하기 불편하더라도 그 물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감정에 더 큰 의미를 둔다. 이처럼 빈티지 사랑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파리의 양대 벼룩시장 중 이반은 클리낭쿠르를, 베누아는 방브를 선호한다. 또 공간의 완성은 음악이라는 이반과 달리 베누아는 벽난로가 꼭 필요하다는 주의다.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이 함께 공유하는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살롱이자 아틀리에는 공통된 취향이 접목된 중립적 공간이다. 예전에는 여행사 사무실로 사용된 현대식 공간에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오래된 문을 달고, 길에서 주운 1500년대의 문짝을 얹어 만든 테이블로 공간의 중심을 잡는 등 대대적인 작업을 감행하고서야 온전히 두 사람의 아틀리에를 만들 수 있었다.


    그들이 사는 스튜디오도 무척 매력적인 공간인 건 분명하지만 아무리 봐도 생활하는 데 불편해 보였다. 무시무시한 겨울 한기가 스며들 게 뻔한 벽과 창, 생활의 편리와는 거리가 먼 삶의 방식은 멋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고집스러운 느낌도 있었다. “물론, 우리도 이 스튜디오가 불편한 곳이란 걸 잘 알고 있어요. 출장을 다니며 호텔에서 지낼 때면 우리도 그 편안함이 좋거든요. 하지만 그 생활이 오래 지속되는 건 원하지 않아요. 따분한 데다 마치 정신이 잠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거든요.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유지하며 산다는 건 그렇게 나쁘지 않아요. 몸이 불편할 땐 마음이 조금 더 살아나죠.” 매일매일 더욱 편하게 살기 위한 해결책들이 제시되는 오늘날, 불편함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삶과 가치를 보고 듣다 보니 ‘이게 실화’인가 싶다. 문득 어느 하나 같은 모양이 없는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컵과 그릇들은 어쩌면 각자가 추구하는 서로 다른 삶을 지지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지금 이 순간에도 이반과 베누아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뻔하다. ‘어떻게 하면 예전보다 더 많은 그림을 그리며 살까?’ 이것이 그들이 이곳에 사는 이유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