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프랑스적인 디자인 스튜디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너무 프랑스적인 디자인 스튜디오

프랑스 디자인의 단단한 기둥 같은 존재 피에르 샤르팡의 스튜디오는 마치 그의 머릿속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ELLE BY ELLE 2017.06.18

아틀리에 앞 계단에 앉은 피에르 샤르팡.


드로잉은 샤르팡이 <엘르 데코> 코리아를 생각하며 그렸다고 이메일로 보내준 것.


피에르 샤르팡 아틀리에의 전경. 그가 디자인하고 롱 포 헤이(Wrong for Hay)에서 출시한 블랙 램프를 사용하고 있다. 왼쪽 벽에 있는 작품은 피에르 샤르팡의 드로잉.


아틀리에 내부의 작업실. 벽에 진열해 놓은 오브제들과 드로잉이 뮤지엄을 연상케 한다. 테이블 램프와 초록색 체어는 엔조 마리가 디자인했다.


피에르의 방 한편에 놓인 사다리는 높은 곳에 그림을 붙이기 위해 마련했다.


피에르 샤르팡(Pierre Charpin)은 유럽 디자인의 계보를 말할 때 그 이름을 빼면 연결 고리가 헐거워지는 매우 중요한 디자이너다. 그러나 누구처럼 여기저기 얼굴을 비추지 않아 행보가 베일에 가려져 있어 더욱 특별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작업에만 몰두하는 그가 파리 근교 이브리(Ivry)에 있는 스튜디오로 <엘르 데코> 코리아를 초대했을 때 모두 설렘 속에서 환호했던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갤러리 크레오와의 협업은 물론 알레시, 르네 로제, 에르메스 등 개성이 매우 다른 브랜드들이 항상 협업을 청하는 디자이너이면서 평범하기 그지없는 아저씨이기도 한 남자, 그의 스튜디오는 주인을 그대로 닮은 모습이었다. 이른 아침, 공기를 가르며 도착한 스튜디오의 문을 두드리자 창문 안쪽에서 커피를 내리던 그가 손을 흔든다. 누군가 문을 열어주길래 안을 빼꼼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혼자다. “아주 오랫동안 혼자 일했어요. 지금은 두 명의 어시스턴트가 있긴 하지만 오후에만 나와요. 무슨 작업을 하든지 간에 항상 그림으로 시작해요. 누군가는 알아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웃음). 오전에는 혼자 조용히 그림을 그려야 하기에 이 시간에 누가 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색하군요.” 말처럼 스튜디오 곳곳에 드로잉이 꽤 눈에 띈다. 그만의 공간임이 잘 드러나듯 1인용 작은 책상이 놓여 있고, 책상 위에는 오픈을 기다리는 미술학원처럼 하얀 종이들이 쌓여 있다. “프로젝트를 위한 드로잉에는 엄청난 집중력이 요구돼요. 작업실 밖에서 그림을 그리는 경우는 드물죠. 여기서는 뭐가 어디 있는지 알고, 필요한 걸 바로 가져오니까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요.” 그가 말한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한 이유를 공간 안에서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작업실의 벽들 때문이다. 아무렇게나 붙여 놓은 게 아니고, 마치 미술관의 전시 공간처럼 간격을 맞춰 질서정연하게 설치한 오브제들과 드로잉은 편집증적이라 할 정도로 일목요연하다. 피에르 샤르팡은 벽에 여러 가지를 진열하는 것을 워낙 좋아하고, 그 오브제들을 바꾸거나 떼는 대신 기존 상태에 추가할 것이 있으면 그 속에서 빈 공간을 찾아내는 과정을 의식처럼 즐긴다고 한다. 그만의 뮤지엄을 가꾸는 아주 예민한 큐레이터라고나 할까. 그의 완벽주의적 성향은 작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여전히 모든 프로젝트의 전 과정이 오직 피에르의 아이디어로 움직인다. 고용된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어시스턴트 개념이 아닌 프로젝트별 담당 매니저처럼 조직화된 다른 디자이너들의 스튜디오와는 다르다. 어시스턴트들은 컴퓨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그를 위해 손으로 그린 드로잉을 3D 디자인으로 구현해 주는 역할만 한다. “어시스턴트들이 출근하지 않는 오전 시간 동안 자기 개인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길 바라고, 그들이 하루 5시간 이상 이 작업실에 머무르지 않길 바라요.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사람이라면 일하며 행복해야 하고,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그들에게 행복한가 하는 문제가 내게는 디자인보다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이게 말로만 듣던 꿀, 아니 꿈의 스튜디오인 걸까. 그는 세계 최고의 갤러리나 브랜드와 일해오면서 이 철칙을 어긴 적 없고 어기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지금 4월 밀란 디자인 위크를 앞두고 디자이너 인생 중 최대 위기(?) 아니면 도전이 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체라미케 피에메(Ceramiche Piemme)와 함께 대량생산을 목표로 하는 디자인을 만드는 중이다. “이전까지와는 다른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와 챌린지를 경험했죠(웃음). 방대한 수요를 목적으로 둔 제품을 만듭니다. 그간 배제했던 또 다른 영역에 도전하면서 디자이너로서 성취감을 얻어요. 나는 나와 친하다거나 내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브랜드 아니면 고급 브랜드와의 작업을 통해 소위 명품만 만들어야 한다는 기준을 두고 싶지 않거든요.” 진정한 디자이너의 정의를 세우고 있는 그에게 디자이너로서 궁극적인 미션이나 가장 원초적인 영감에 대해 물었다. “디자이너로 일한 지 20년이 넘었어요. 그러니 내가 무언가를 디자인하려 하면 이미 20년간 구축한 나만의 세계에서 만들 수 있어요. 그때그때 톡 건드리는 것 같은 무엇이 있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내가 일궈놓은 디자인 우물 속에서 물을 퍼 올리는 것과 같아요. 그 우물물에 가끔 꽃이 비치기도 하고 나비가 날아오르기도 하지만. 꾸준히 일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샘솟아요.” 자고 일어났는데 그날 뭘 하면 좋을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 날이 괴롭다는 그는 외부로부터 뭘 끌어다 흉내를 내는 사람과는 태생부터 다른 디자이너, 아니 예술가인 것 같다. 그의 디자인은 미학적으로도 훌륭하지만 좀 더 깊고 현학적인 메시지를 갖는 이유는 아마도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인간적인 생각에서 모든 게 탄생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직 내 안에 있는 심상을 고도의 집중력으로 끄집어내 손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요즘 세상에서 얼마나 지속하기 어려운 탐구인지,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업이 얼마나 고고하고 단단한지 이 스튜디오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작업실에 초대된 우리는 깨끗한 창작의 샘이 찰랑이는 우물 속에 잠시 머리를 집어넣었다가 꺼내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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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photographer Michel giesbrecht
    writer 김이지은
    editor 이경은
    art deisgner 이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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