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알아야 돈이 보여

어릴 때 맺은 나와 돈과의 관계가 미치는 영향. 재무 테라피의 모든 것::재무,저축,돈,습관,제테크,엘르,elle.co.kr::

프로필 by ELLE 2017.04.24


매달 월급을 받는데도 통장 잔고는 마이너스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우두커니 천장을 바라보면 돈 걱정에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온다. 남자친구로부터 “제발 쓸데없는 물건 좀 그만 사”란 핀잔까지 들었다면 지금이야말로 재무 테라피가 필요한 때다. “재무 테라피(Financial Therapy)란 용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해하기 쉬워요. 돈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을 조금 더 나은 쪽으로 바꿔주는 거죠.” 미국 재무테라피협회의 테라피스트 메건 포드가 말한다. 기존의 재무 플래너가 자산 관리를 목적으로 주로 복잡한 수치 분석에 초점을 맞췄다면 심리적 요인을 분석해 돈에 관해 잘못된 관념을 교정해 주는 게 재무 테라피스트의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예컨대 부모가 돈 문제로 싸우거나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면 자식에겐 자연스레 돈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길 수밖에 없다. 거꾸로 부모가 지나칠 정도로 돈을 아끼는 자린고비 성향을 보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가정환경에서 형성된 돈에 관한 생각은 우리 행동에 크게 영향을 미쳐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상호작용해 자신도 모르게 그들과 똑같이, 아니면 정반대로 행동하게 되거든요.” 메건 포드가 말한다. “돈에 대한 심리는 잠재의식에 존재하기 때문에 스스로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할 확률이 높아요. 그저 과소비로 치부할 뿐 내가 왜 그랬을까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죠. 그러다 끝내는 돈과 감정,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형성된 심리가 극단적으로 치우쳐 불균형 상태에서 폭발해 버리는 거예요. ‘될 대로 되라’ 내지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최악의 선택을 내리는 거죠.” 알고 보면 우리가 매일 돈에 관해 내리는 결정은 환경적으로 형성된 재무 심리와 깊은 연관이 있다. 전문가들은 돈과 과거의 기억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본격적인 재무 설계에 들어가기 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상당수 마주친다고 증언한다. “낭비 습성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만 돈 문제에 해당하는 건 아니에요. 불균형을 이루는 모든 재무 행동이 여기에 포함돼요. 바쁘다는 핑계로 수익과 지출에 전혀 신경 쓰지 않거나 한 번에 생활용품을 충동 구매하는 행위까지 포함돼요. 지나친 절약 성향 역시 자산 형성에 도움을 주지만 결코 건전한 재정 심리는 아니에요.” 한국에도 이 같은 심리 연구를 재무 상담에 활용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조기 유학을 다녀와 현재 유능한 영어 강사로 이름을 떨치는 분을 만났는데, 매달 월급의 꽤 많은 금액을 뮤지컬 감상에 다 써버리는 거예요. 이 분과 한참 대화를 나눠보니 ‘부모가 귀찮아서 나를 멀리 보내버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어요. 학창 시절 내내 외롭고 불행했기에 그에게 인생의 모토는 행복이고 나아가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것엔 아낌없이 돈을 써도 괜찮다는 재무 논리가 생긴 거죠. ‘돈=현재의 행복’이라 믿는 그에게 미래를 위한 대비책이 설 자리 따윈 없었어요.” 인기 블로그 ‘친절한 언니의 재무 심리 스토리(youna5897.blog.me)’를 운영하는 재무 테라피스트 박유나의 설명이다. 다시 메건 포드의 얘기에 귀 기울이면 ‘적색경보 행동’에도 여러 패턴이 있다고 한다. “일단 도움이 필요한 곳에 발을 들여놓는 게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해요. ‘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더 심각한 상태에 도달하기 전에 적정 관리가 필요한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하거든요.”


2014년 호주 심리학회(Australian Psychological Society)의 ‘스트레스와 웰빙 설문조사’에서 70%의 응답자가 ‘돈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가 물리적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고 대답했다. 미국 심리학회에서도 ‘심각한 재정적 스트레스는 과음과 과식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우울증, 무기력함, 편두통, 수면장애, 위궤양, 심장병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돈은 정신 건강과도 직결되는 이슈다. “돈 문제는 사람을 히스테릭하게 만들죠. 점점 더 모든 신경과 초점이 돈 문제로 향하지만 그런데도 이 악순환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해요. 금전적인 스트레스 역시 내 안의 나를 돌보는 치유를 통해 다스릴 필요가 있어요.” 또 다른 재무 테라피스트 하이디 암스트롱이 말한다. “제가 만나는 여성들은 오가닉 푸드나 크로스핏처럼 웰빙과 관련된 부분엔 돈을 아끼지 않아요. 무엇보다 웰빙과 관계 깊은 재정적인 부분은 간과하고서 말이죠. 사실 얼마나 많은 금융 지식을 가졌는지는 문제 되지 않아요. 돈과 감정이 나란한 위치에 서 있는 걸 알고 이를 같이 다스려 나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요사인 확실히 재정적인 건강함에 대한 중요도를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긴 해요.” 브리즈번의 재정 플래너이자 요가 강사로 여성의 재정을 디자인해 주는 ‘웰시(Wellthy)’ 전파에 힘쓰고 있는 리아 쇼델이 덧붙인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관계부터 커리어에 이르기까지 삶의 많은 부분을 결정짓는 돈이 페미니즘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간 여성들은 다양한 직업에서 활동해 왔고 전문적인 커리어와 높은 임금을 성취해 왔다. “변호사, 의사를 포함해 전문직으로 일하는 여성들도 돈 관리는 힘들어해요. 돈은 오랫동안 억눌린 것에 대한 보상이나 과시, 부정적 편견과 연결돼 있으니까요. 일면 ‘번 만큼 쓴다’는 게 당연할 수 있지만 균형이 깨진 심리 상태와 행동은 돈을 거대한 괴물로 만들 수 있어요.” 여성의 재정 문제에 특화된 어드바이저 카렌 엘리가 말한다. 여성들의 재무 관리를 막는 외부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출산과 육아 때문에 한동안 여성들이 일터를 떠나 있는 걸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더욱이 기존의 재정 플랜은 남성 위주로 편중돼 있다. 호주 정부의 리서치에 따르면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독자적으로 돈을 다루는 일에 자신감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를테면 ‘돈을 다루는 건 지루한 일’ ‘너무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재정 관리는 현재의 소비를 옭아매는 일’로 치부하면서 아무리 관리해도 지금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을 거란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하다는 게 보고서 맨 마지막 장의 결론이다. “미국이나 호주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은 상황이 달라요. 재테크 강의를 해보면 대다수 참석자가 여성이거든요. 다만 남녀를 떠나 돈을 대하는 한국인 특유의 이중적인 태도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속으론 이것저것 따지면서 드러내놓고 돈을 계산하는 모습은 반기지 않거든요. 흔히 여러 사람이 모여 식사를 했는데 누군가 한 사람이 나서서 계산하면 ‘통이 크다’ ‘멋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 때문에 제대로 돈 문제를 따지지 않는다면 아마도 앞으로 인생이 굉장히 힘들어지겠죠.” 박유나의 설명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첫걸음만 내디디면 얼마든지 현명한 전략을 세울 수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마음가짐을 장착하는 것이 우선. 메건 포드 역시 “부모 세대나 동료, 사회가 오랫동안 주입했던 돈에 관한 메시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어요. 인식을 달리 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변화가 생기거든요. 스스로 재무 상태를 깨닫지 못한다면 감정적, 금전적 카오스는 날이 갈수록 깊어질 거예요”라고 조언한다. 간단한 예로 ‘내가 왜 펌프스를 사는가?’란 문제를 두고 생각해 보자. 당장 펌프스가 필요하고 살 수 있는 능력이 되기 때문인지 혹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행하다고 느껴서 구입하는 건지를 되짚어보면 평소 내 소비습관을 알 수 있다. 돈에 관해 ‘순수한(!) 내’가 실망스럽다면? 지금껏 당연하게 여기고 고치려 하지 않았던 것에 반기를 들어보자. 삶의 일부에서 자신감을 회복한다면 모든 분야에서 시너지가 발생할 것. 돈뿐 아니라 인생 전체에서 놀랍고도 파워플한 기적이 펼쳐지는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른다.


재무 테라피에 대해 궁금하다면?
개인이 타고난 본능적 특성과 후천적으로 얻은 돈에 대한 경험이 재무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진단하고 연구하는 한국재무심리센터 (https://www.npti.co.kr/)의 문을 두드릴 것. 자신의 재무 심리를 진단할 수 있는 테스트도 가능하다.

Credit

  • writer MEG MASON
  • editor 김나래
  • digital designer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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