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시몽의 아틀리에

파리에 있는 세르주 벤시몽의 아틀리에에는 벤시몽 슈즈의 각양각색 컬러보다 더 많은 나라에서 온 오브제들이 가득하다.::벤시몽,아틀리에,작업실,파리,프랑스,슈즈,스니커즈,엘르,elle.co.kr::

프로필 by ELLE 2016.09.24

회의실과 작업실은 파티션 대신 천정까지 자란 선인장으로 공간을 나눈다. 아틀리에에 초록색은 반드시 필요했지만 식물을 가꿔야 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선인장을 선택했다.

 

 

 

세르주가 30년간 모아온 빈티지 가구들을 회의실에서 사용하고 있다. 테라니움은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도록 천정에 매달았고 전 세계 친구들과 파트너들에게 받은 기념품들로 장식했다.

 

 

헌팅 트로피는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기념품.

 

 

신발을 전화기 삼아 포즈를 취한 세르주 벤시몽.

 

 

빈티지 가구들 중엔 한 때 누군가의 책상에 놓였다가 회의실로 자리를 옮긴 의자들도 있다.

 

 

벤시몽 갤러리 프로젝트에 놓일 프로토타입 오브제들. 앞에 놓인 대리석 의자는 에두아르도 나소, 뒷편 책상과 의자는 프라마의 작품이다.

 

 

패턴이 화려한 다음 시즌 벤시몽 슈즈들.

 

 

파리를 상징하는 클래식 아이템을 꼽으라면 흔히 까만 베레, 스트라이프 티셔츠 그리고 바게트 정도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리스트는 몽마르트르 언덕의 화가들이 그리는 초상화만큼이나 지루하다. 벤시몽의 테니스 슈즈는 어떨까? 실제로 파리지앵이 자신의 신발장에 정확히 몇 켤레의 벤시몽이 있는 줄도 모른 채 신고 다닌다는 그 신발 말이다. 벤시몽 슈즈는 파리 토박이인 세르주 벤시몽이 만들었다. 1970년대 초 군용품 도매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사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프랑스 군대에 납품할 테니스화를 만든 것이 그 시작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재미있는 일화 중 하나는 1970년대 초 파리 패션계에 실제 군용 재킷을 매거진 스타일링에 제안한 사람이 바로 세르주였다는 사실. 밀리터리 트렌드가 패션계에 불어닥치는 걸 지켜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은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사업가적 기질과 디자이너의 꿈을 믹스해, 손으로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처럼 각양각색 컬러와 패턴을 적용해 특정 집단이 아닌, 어떤 취향에도 잘 맞는 테니스 슈즈를 만들기로 한다. 그것이 현재의 벤시몽이다. 노년에 이른 현재도 브랜드를 지휘하고 있는 세르주 벤시몽을 파리 생 마르탱 운하 옆에 있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매출로 보면 놀랄 만한 비즈니스맨이지만, 그는 나이나 직책을 가늠하기 어려운 개구쟁이 같은 모습으로 <엘르> 코리아를 살갑게 맞았다.


그의 평생을 쏟은 브랜드의 역사만큼 아틀리에는 오래된 나무 기둥 아래 수십 년간의 기록과 그만큼의 먼지를 켜켜이 쌓아 급조할 수 없는 벤시몽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아틀리에에는 수십 명의 디자이너들이 근무하고 있지만 진정한 용도는 벤시몽의 영감을 가득 모은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그가 스스로 지치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 이유로 꼽은 ‘여행’의 부산물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매년 몇십 번씩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업무와 무관한 도시의 뒷골목과 문화를 샅샅이 뒤지고 다니며 오브제들을 수집해 왔다. “자신하는데, 가 보지 않은 나라가 없어요. 벤시몽을 수출한 나라이거나 마켓 가치만 따지면 재미가 없죠. 미지의 나라를 목적지로 정하고, 한 번 정하면 일단 떠납니다.” 새로운 곳에 도착한 뒤에는 전문 여행가처럼 재미있는 곳들을 찾아내고 시장에서 찾아낸 투박한 조각 작품부터 고급 갤러리에서 취급하는 아트 피스까지 보따리장수처럼 사가지고 돌아온다. 이 물건들을 일부러 아틀리에 여기저기에 무심한 듯 툭툭 올려두는 이유는, 자신이 여행에서 보고 느낀 것을 직접 가 보지 못한 스태프들과 나누고 싶어서란다. 1980년대에 파리에서 시도한 벤시몽 컨셉트 스토어에서 벤시몽의 슈즈와 패션을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디자인 소품들을 함께 전시했는데, 그때부터 그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컬렉션이 시작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까다롭고 폐쇄적인 성향의 패션 디자이너들과는 성격부터 달랐기에, 그는 유별난 기준으로 컬렉션하기보다는 쉽게 좋아하고 무엇이든 금방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대범하고 푸근하며 자유롭기까지 하다. 몇 년 전 생 마르탱 운하의 명소인 디자인 북 서점 ‘아타자르(Artazar)’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문 닫을 위기에 처했을 때 벤시몽이 사재로 서점을 되살린 일화도 소문낼 만하다. 최근에는 ‘벤시몽 갤러리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그의 유명한 디자이너 친구들의 작업을 예상한 사람들을 골리기라도 하듯 무명의 신인 디자이너들에게 컬레버레이션을 제안한 것이다. 패션에 경계를 두면 그것에 스스로 갇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가 모든 것에 ‘오픈 마인드’인 건 아니다. 절대로 벤시몽 세계에 입성할 수 없는 한 가지, 모든 패션 피플들이 사랑하는 컬러인 블랙이다. “처음 벤시몽을 론칭했을 때 대부분의 브랜드가 블랙에 점령당한 것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벤시몽엔 블랙 컬러를 쓰지 않겠다는 공식을 세웠죠.” 물론 매 시즌 주요 컬러를 고를 때마다 몸살을 앓지만, 덕분에 팬톤 컬러 칩만큼이나 많은 색의 벤시몽이 태어났다. 요즘 그는 남미 국가의 강렬하면서도 따뜻한 컬러에 푹 빠져 있다고 한다. 역시 지난 여행지에서 떠오른 생각이므로 그는 남미를 연상케 하는 신선하고도 진짜에 가까운 컬러 조합이 나올 거라고 자신한다. 이런 컬러들은 그가 전개하는 가구와 패브릭, 벽지 등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제품에 적극 반영될 예정이다. 오래된 것들을 버리지 않는 일도,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일도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러나 이 ‘할배’에겐 모든 게 자연스럽다. 이 아틀리에의 분위기처럼.

Credit

  • writer 김이지은
  • editor 이경은
  • photographer Michel Giesbrecht
  • digital designer 오주희

이 기사엔 이런 키워드!

이 기사도 흥미로우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