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홀렉 형제의 파리 아틀리에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부홀렉 형제의 파리 아틀리에

제품에 철학과 서정성을 담는 디자인계의 시인 부홀렉 형제를 파리 아틀리에에서 <엘르 데코> 코리아가 직접 만났다.

ELLE BY ELLE 2016.03.08

왼쪽에 앉아 오른손으로 턱을 괸 동생 에르완, 오른쪽에 앉아 왼손으로 턱을 괸 형 로낭.




생파리 아트페어 피악(Fiac) 기간 동안 튈르리 공원 안에 설치했던 그룸 Emeirge와의 키오스크 프로젝트.



텔아비브의 Tel Aviv Museum of Art에서 열린 부홀렉 형제의 전시 <17 Screens>의 설치작 중 하나.



얼마전 발표된 세리프 티비 그리고 버트라와 협업한 벨레빌(Belleville) 콜렉션 중 테이블. 그 뒤로 설치작업을 위한 드로잉이 보인다.




형제가 갓 그린 의자 드로잉들.




HAY의 Palissade 의자가 놓여있는 부홀렉 형제의 작업실 입구.




형제가 출간한 책과 프로토타입이 줄지어 놓여있는 창가. 오른쪽엔 이팔라를 위해 디자인한 글라스 꽃병시리즈 ‘루투(Ruutu)’.



파리의 차이나타운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11구의 벨빌(Belleville).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가 사랑하는 산업디자이너 듀오 로낭 & 에르완 부홀렉(Ronan &Erwan Bouroullec)의 아틀리에를 찾아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지나왔던 거리 풍경과는 전혀 다른 어마어마한 규모의 옛 공장 건물이 우리를 반겼다. 이곳은 부홀렉 형제를 비롯해 다양한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의 아틀리에가 가득해 건물 전체가 작업실이다. 부홀렉 아틀리에는 각종 재료가 넘쳐나는 지하 작업실과 널찍한 책상에서 일하는 직원들, 두 형제의 공간이 있는 1층, 드로잉 아카이브와 모형들로 가득한 2층으로 이뤄져 있다(5명 내외의 작은 팀을 유지하면서도 아카이브만 정리하는 사람을 두고 있을 정도!). 1층에 들어서자마자 있는 일종의 문간방(?)을 두 형제의 사무실로 쓰는데, 등받이가 낮은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던 로낭이 가장 먼저 수줍은 얼굴로 우리를 반긴 후, 다시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에르완 역시 책상 밖으로 머리를 빼꼼히 내밀고 인사한 후 바로 자신이 하던 일로 돌아갔다. 원래 알던 사람 대하듯,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향하는 느낌이랄까. 부홀렉 형제는 1990년대 말 혜성처럼 등장했다. 과하고 대담한 디자인으로 경쟁하듯 부풀어가던 디자인계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시그너처인 간결하면서도 시적인 디자인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나무 잎맥을 형상화한 의자 ‘베지털 블루밍’, 여러 조각들의 모서리를 고무 밴드로 만들어 유기적으로 변형 가능한 ‘클라우즈’, 조합에 따라 수양버들 커튼이 해초 모양의 파티션이 되기도 하는 플라스틱 모듈 ‘알그’ 등 예상 가능한 재료와 형태를 가지고 특별한 디자인을 선보인 것. 마지스, 카펠리니, 르네 로제, 비트라, 글라스 이탈리아 그리고 최근엔 삼성에 이르기까지 이들과 협업을 진행한 브랜드들 역시 모두 쟁쟁하다. 하지만 그들의 일상은 이런 명성과 관계없이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계속 무언가를 드로잉하고 있던데, 하루에 스케치북 한 권을 다 쓰기도 하나요 그날그날 달라요. 예전엔 꼭 드로잉해야 마음이 편했는데 이젠 저도 중년이 된 건지, 꼭 드로잉이 없더라도 이야기만으로 제 생각을 구현할 수 있게 됐어요. 요즘 아르텍의 의자를 구상하고 있는데, 스마트폰으로 드로잉하고 있어요.


위층에 있는 드로잉 아카이브가 대단하더군요. 지난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나요 전혀요. 아카이브는 말 그대로 아카이브죠. 저 위는 카오스 아니던가요(웃음)?


아틀리에는 언제 문을 열었나요? “새로운 영감을 위해 4~5년에 한 번 정도 이사하는 게 좋다”는인터뷰를 봤어요 그건 아마 장소에 개의치 않는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틀리에는 우리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원하는 작업을 해나갈 수 있는가가 제일 중요하거든요. 여긴 10년 넘게 있었어요. 전에는 생드니(파리 북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도시)에 멋지고 큰 아틀리에가 있었지만 파리를 오가는 데 시간이 꽤 들더라고요. 여긴 집에서 걸어올 수 있어요. 이젠 넘쳐나는 아카이브와 모형 때문에 비좁아지긴 했지만요. 이 건물 안에 다른 공간을 더 임대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중이에요.


부홀렉 디자인을 보면 군더더기 없는 라인과 시적인 감성이 느껴져요. 그래서 아주 정갈한 아틀리에를 상상했는데 하하하. 어떤 공간을 기대했나요? 디자이너에게 아틀리에는 셰프에게 있어서 부엌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면 돼요. 이곳은 우아하게 누굴 맞이하는 쇼룸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샘솟고 실현되는 현장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여기서 가구 하나를 뚝딱 만들어내라면 솔직히 당장이라도 가능해요. 물론 시판 가구처럼 깨끗한 마무리는 어렵겠지만요. 아마도 시골에서 자라서, 필요한 건 뭐든 만들어내던 어린 시절의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서로 ‘잘 맞는다’는 건 여러 의미가 있어요. 성향이 같아서 혹은 달라서일 수도 있고요. 둘의 관계는 어떤가요 우린 형제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에요. 물론 같은 곳에서 태어나고 같은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비슷한 점이 많겠지만, 서로 다른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확실히 달라요. 말로 표현하는 게 좀 어렵긴 하네요.


서로 보완해 주고 있는 점은 무엇인가요 전 오래전부터 혼자서도 나름 성공적인 활동을 벌여왔어요. 이후 커져가는 작업들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게 되면서, 에르완이 자연스럽게 내 어시스턴트로 함께 하게 됐죠. 지금은 누가 어떤 역할이랄 것 없이 서로 돕고 있어요.


함께 작업하는 방식은 어떤가요? 처음부터 끝까지 딱 붙어서 작업하나요 전혀요(웃음). 각자 따로 생각하고 디자인할 ‘공기’가 필요해요. 그러고 나서 오랜 대화를 거쳐 아이디어를 완성해 나가죠.


2008년 한국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전자제품 회사와 접촉이 있었지만 우리가 요구한 작업방식에 겁을 먹은 것 같다’는 대답이 재미있었어요. 그 ‘요구한 작업방식’이 뭔가요 겁을 먹었다기보다 함께 일하기까지 아주 신중했다고 보는 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아요. 삼성과 일하는 데 심사숙고한 이유는 우리 아틀리에가 삼성에 비해 상당히 작은 규모이고, 여기서 더 넓히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다른 브랜드와 하듯 우린 굉장히 가까이 소통하면서 일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많은 사람을 거치는 건 부홀렉 스타일이 아니에요. 삼성 역시 우리의 이런 스타일을 존중해 줬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얼마 전 북유럽에서 발표된 형제의 첫 가전제품 디자인 프로젝트인 ‘세리프 티비(Serif TV)’였죠. 완성하는 데 3년이 걸렸다고요 삼성과 처음 접촉한 게 3년 전이었고, 완성까지는 그보다 덜 걸렸어요. 디자인 작업을 할 때 프로젝트에 관해 끊임없이 대화하며 상대를 알아가는 게 꽤 중요한 부분이죠.


우리 집엔 텔레비전이 없는데 세리프를 보니 탐나더라고요. 다른 가구에 비해 작업이 더 힘들진 않았나요? 우리도 집에 텔레비전이 없는데 요즘 고민돼요(웃음). 사실 요즘은 스마트폰이 뭐든지 다 커버하니 텔레비전은 빈티지처럼 여겨지는 오브제가 된 것 같아요. 작업이 특별히 힘들진 않았고, 좀 더 감성적으로 풀어내는 데 집중했어요. 특히 커튼처럼 보이는 화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프로그램을 많이 이용해야 했는데, 그 점이 새로웠어요. 중간에 스마트폰으로 연결해 이메일 체크가 가능하게 만들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우리 감성과 달라서 결국 하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결정 같아요.


삼성과 함께 작업하면서 서울을 여러 번 방문했을 텐데 어땠나요? 매번 시간이 여의치 않아 오간 횟수에 비해 많이 돌아보지는 못했어요. 개인적으로 사람과 나라는 음식을 통해 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한국 음식은 정말 특별해요. 이번에 처음 산낙지를 먹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참 즐거워하더라고요. 한식을 먹기 위해서라도 한 번 더 갈 수 있을 정도로 서울을 좋아하게 됐어요.


1997년 형제를 주목한 카펠리니를 비롯해 이세이 미야케, 비트라, 아르텍, 알레시 등 수많은 브랜드와 협업해 왔어요. 협업을 하면서도 놓치지 않는 당신들만의 철학이나 가치가 있다면요 좋은 디자이너는 좋은 영화배우와 같다고 생각해요. 어떤 영화감독과 일해도 연기를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사람 말이죠. 이번 주에는 텔아비브에서 전시 오프닝을, 지난주에는 런던에서 삼성 텔레비전을 소개했고, 그 전 주에는 이탤리언 타일 무티나를 위해서 작업했죠. 그때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지만 그게 다 우리인 건 분명한 사실이에요.


가구 외에도 램프의 소켓 부분이나 소화전 등 보통 굳이 디자인하지 않는 일상적인 디자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에르완) 자동차 디자인은 어때요? 모든 차들이 비슷한데, 도시에서 사용되는 차들은 천천히 다니니까 좀 둥글둥글하고 포근하게 디자인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로낭) 도시개발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도시 자체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좋은 해결점을 마련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죠. 그래서 내년 3월 북서부 도시 렌(Rennes)에서 열릴 전시도 도시 전반에 관한 새로운 디자인을 말하는 주제예요.


그렇다면 지금 살고 있는 파리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진 않나요? 전 최근 바뀐 파리 시내 버스정류장이 별로던데 저 역시 그 정류장은 별로지만 뭘 하기에는 이른 것 같아요. 이 도시에서 꼭 뭘 해야겠다고 다짐한 적은 없지만 기회가 생기면 좋겠어요. 항상 걷거나 버스를 타고 다니거든요. 피악(FIAC, 매년 10월 파리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 기간에 튈르리 공원에서 선보인 키오스크 디자인 역시 도심에서 이용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디자인한 거였어요.


비교적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환상적인 아틀리에’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저희야 온종일 디자인을 생각하니까 출퇴근 시간이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사무실에 오래 있으면 일정 시간 이후로는 아주 ‘다운’되기 때문에 일찍 퇴근할 필요는 있어요(웃음). 분명한 건 창의력이나 완성도는 시간과 절대 비례하지 않는다는 거죠. 밖에 나가서 멋진 걸 보고 숨을 쉴 필요가 있어요. 우리와 아틀리에,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일 거예요.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로낭) 아침. 특히 집에서 아틀리에까지 가는 시간이 참 좋아요. 걸어서 고작 10분 정도 걸리지만 단골인 카페 두 곳에 들러 커피를 마십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사색에 잠기는데 그때 많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출근이 늦는 건 당연하죠(웃음).


디자인에 관해 요즘 드는 고민은 좀 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고 있어요. 디자인이 뭔지, 우리가 하고 있는 디자인이 과연 얼마나 필요한 작업인지. 또 디자인이라는 게 변화를 이끌어내는 건지, 동반하는 건지, 보여주는지 도구인지….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정말 필요한 디자인, 진정한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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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writer 김이지은
    contributing editor 정승혜
    photographer Diane Arques
    digital designer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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