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형 발렌타인을 찾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온갖 미디어가 신나게 재생산하던 성과적 사랑에 심취했다.‘남자들이(혹은 여자들이) 좋아하는 연애 스킬’, 밀당, 썸, 연락 횟수 등에서 매일 새로운 매뉴얼이 쏟아졌다. 드라마에서 애인을 차에 태우고 과속하면서 ‘밥 먹을래, 나랑 죽을래?’ 하고 위협하거나 힘으로 손목을 낚아채거나 벽에 밀치는 일이 사랑의 명장면으로 그려졌다. 나를 원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날뛰는 것이 사랑의 표현이라고 배운 탓인지 애인이 밀폐된 공간에서 내 손을 잡아 강제로 페니스를 만지게 했을 때도 헤어지지 못했다. 그때는 로맨틱 코미디였지만 지금은 호러인 이야기와 그때는 사랑이라고 믿었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성범죄인 일들이 수놓았던 2000년대.
서로의 외모와 취향만큼 서로의 삶이 만든 필연적인 다양함과 약자성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로맨틱하다. 애칭을 붙이는 일은 언제나 설레지만 서로를 상처 주는 차별적인 단어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공감하는 일 역시 섬세한 애정 행위다. 훌륭한 와인에 화끈한 신체도 중요하지만, 연일 불법 촬영과 교제 폭력 보도가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 섹스를 앞둔 여성의 공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 섹시할 수도 있다. 철저한 피임 관념에 청결한 손톱, 가능하다면 성병 검사지 교환도 기분 나빠하지 않을 매너와 신뢰감이 있다면 마음뿐 아니라 모든 감각까지 상대에게 던져볼 수 있겠지.
이런 새로운 규칙은 비단 연애에만 적용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돌고래를 사랑한다면 수족관에서 쇼를 보는 대신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일에 시간을 쓰고, 개를 사랑한다면 펫 숍에서 개를 구매해 갖가지 옷으로 치장하는 일보다 그 개가 살다 온 세상을 외면하지 않고 바꾸려는 시도로 사랑할 수 있다. 자녀나 조카가 귀여운 만큼 그 아이들의 세상을 위해 텀블러를 쓰는 것도 사랑이고,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을 이용하려는 당연한 시도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동료 시민과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다. 만약 그걸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오른쪽으로 스와이프(데이트 앱에서 상대를 선택하는 모션) 할 수도 있겠다. 그런 희망을 안고 스와이프 하러 이만 가보겠습니다. 해피 밸런타인!
다양한 비혼자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예능 팟캐스트 〈비혼세〉 진행자이자 출판 레이블 ‘아말페’ 대표. 여성의 몸과 사랑, 관계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