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가족 여행할 때 먹어야 할 마음가짐 #여자읽는여자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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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가족 여행할 때 먹어야 할 마음가짐 #여자읽는여자

이 사랑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라효진 BY 라효진 2024.02.02
첫째, ‘음식 맛없다’는 말하지 말 것. 둘째, ‘이게 얼마냐? 비싸다' 소리 하지 말 것. 인천에서 LA까지 11시간 비행이 시작되기 전, 부모님과 마주 앉아 금기어를 알려줬다. 다년간의 여행에서 친정 부모님이 자주 했던, 나와 남편의 심기를 매우 거슬리게 했던 말을 골랐다.  
 
부모님은 “알았어, 말 잘 들을게”라며 굳은 다짐을 하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러고는 기내식을 먹자마자 ‘짜다'라는 형용사를 반사적으로 내뱉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미국 음식은 다 짜고 기름지니 적응해야 한다며 ‘짜다’는 말도 금기어에 추가시켰다. 이번 여행의 비행기, 숙소 예약부터 비자 신청 등 여행 준비 실무를 거의 다 담당한 남편은 부정적 피드백에 매우 민감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남편은 다시 한번 말했다. “장모님, 장인어른. 미국은 긍정의 나라예요. 긍정적으로 사고를 바꾸셔야 합니다!”  
 
 
친정 부모님과 무려 보름 동안 미국과 캐나다를 여행하는 일정이었다. 서른 넘은 자식과 부모는 2박 3일 이상 붙어 있으면 안 된다는데 70대 할아버지부터 7살 손자까지 3대가 함께하는 장기 여행이라니. 주변에서 더 걱정이 많았다.  
 
친정 부모님은 사위가 그토록 강조하는 긍정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식당에서 음식이 맛이 없는 것도, 시장에서 재료가 신선하지 못한 것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계속 곱씹는 사람들.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니 당연히 새로운 시도에도 인색했다. 변수투성이인 여행 메이트로서는 부적합이었다.  
 
부모님은 자그마한 돌부리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들 같았다. 자식들이 평균, 표준이라는 안전지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전전긍긍했다. 인생에는 불안과 시련이 있기 마련인데 그때마다 안달복달하는 것은 본인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불행이었다. 부모님이 걱정을 토로할 때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쿨한 사람인 척 연기했다. 부모님의 부정이 행여 내게도 옮을까 겁났다.  
 
북미의 담대한 기운 때문일까. 여행의 설렘 덕분이었을까. LA에서 출발해 그랜드캐니언, 라스베이거스를 지나 남동생이 있는 캐나다 밴쿠버까지 가는 강행군 동안 부모님은 의외로 훌륭한 여행 메이트가 되어주었다.  
 
그랜드캐니언의 뜨거운 태양에 몸이 타들어갈 때도, 라스베이거스에서 밥시간을 놓쳐 어지러울 때도 불평 한 마디 없이 남편과 나를 따라왔다. 칠순 아빠는 차 안에서 멀미가 날 텐데도 아이에게 책을 읽어줬고, 엄마는 호텔에서 밤마다 손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했다. 처음 보는 풍경 앞에서 소년, 소녀처럼 감탄하고 행복해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여행의 보람을 느꼈다. 물론 ‘음식이 너무 많다, 이걸 어떻게 다 먹냐'라는 말이 추가 금지어로 설정되기는 했지만.
 
 
여행 막바지쯤 캐나다에 있는 조프리 호수에 하이킹을 갔을 때였다. 꽤 험난한 경사로가 이어졌는데 스틱도 없고 물도 부족했다. 허리 디스크 수술을 했던 아빠가 괜찮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쌩쌩했다. 저질 체력인 엄마도 씩씩했다. 마침내 에메랄드빛 호수에 다다랐을 때 아빠는 소리쳤다. “그래, 이 맛에 등산 오는 거지!” 아빠의 목소리가 호수보다 더 청명했다.  
 
하이킹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아빠는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여행을 앞두고 몇 개월 동안 엄마와 매일 저녁 집 근처 놀이터에서 40분씩 걷기 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여행 내내 보여줬던 부모님의 긍정은 의지와 노력의 산물이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엄마, 아빠를 천덕꾸러기처럼 생각했다. 젊은 우리가 부모님을 모시고 다녀주는 거라고, 그러니 우리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젊었던 부모님이 어린 우리를 데리고 고생스럽게 여행했던 시간은 까맣게 잊은 채.  
 
그날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영화 〈벌새〉를 만든 김보라 감독이 동명의 책 〈벌새〉에 쓴 글을 떠올렸다. 자전적 서사를 바탕으로 〈벌새〉의 시나리오를 쓰고 또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김보라는 “멋지고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했던 내 모습 안에, 여전히 울부짖는 중학생 아이"를 만난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어 부끄러워하는”, “집이 있지만 집이 없다고 느꼈던” 그 아이를 직면하기 위해 김보라는 가족들과 지난 상처를 헤집으며 “묻고 또 묻고, 싸우고 또 싸”운다. 가족들을 깊이 이해할수록 시나리오는 더욱 완전해진다. 치열하게 미워하고 싸우고 화해한 자리에는 온전한 사랑이 돋아난다.  
 
나는 그들을 혈연가족이라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사랑할 만해서, 사랑하게 되었다. 그들이 나를 온전히 사랑해주고, 집에 왔다는 느낌을 비로소 주었기에.
 - 김보라 〈벌새〉 중에서  
 
여행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은 미안함도 고마움도 아닌 안도감이었다. 부모니까 당연히, 자식이니까 당연히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굳이, 일부러’ 노력을 해줬다는 안도감. 이 사람들을 “사랑할 만해서” 사랑할 수 있다는 안도감. 엄마, 아빠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부모와 자식을 이어주는 건 핏줄이 아닌 사랑임을 깨닫는다. 서로를 위해 마음과 시간을 내어주는, 때로는 나를 기꺼이 내려놓기도 하는 사랑. 이 사랑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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