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폴댄스하는 페미니스트 가능? 새로운 운동법을 찾았다

응시하는 운동  
 
“폴 댄스의 좋은 점이 뭐예요? 딱 하나만 대봐요.”  
 
내 팔다리 곳곳의 멍을 본 친구가 물었다. 발등에는 까진 상처, 이미 몇 번이나 터진 물집이 다시 잡힌 오른쪽 손바닥, 겨드랑이에 폴을 끼우고 빙글빙글 도는 피겨 헤드 동작을 하다가 힘을 잘못 쓰는 바람에 목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으니 친구로서 물어보고 싶을 법도 했다. 글쎄, 뭐가 좋지? “근력이… 생기는 거?” 그건 확실했다. 무게중심이 엉덩이와 허벅지 쪽에 쏠려 있는 극단적인 상하체 비율로 살아온 내게 처음으로 등과 어깨 근육 비슷한 걸 만들어준 운동이니까. 그러나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이 그때는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지난여름,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줌바가 ‘호흡량이 많은 GX류의 운동’으로 분류됐다. ‘인생 운동’이라고 여겼던 줌바를 박탈당한 나는 오직 댄스라는 이름에 속아 폴 댄스 스튜디오를 찾았다. 처음으로 폴을 잡고, 잡은 채로 발을 떼고 돌아본 순간 깨달았다. 이건 댄스도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운동도 아니다. 몸에 근육량이 적고 유난히 작은 손의 악력은 현저히 부족한 데다, 손발과 몸에 모두 땀이 많으며, 무게중심이 하체에 있는 나는 폴 댄스를 잘할 수 있는 조건의 정반대 지점에 있었다. 어떤 운동이든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딱 3개월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폴 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폴 댄스는 하면 할수록 어려웠고, 하면 할수록 복잡한 감정에 빠져들게 하는 운동이었다. 특히 ‘보여지는’ 운동이라는 점이 그랬다. 수업 시간에 영상을 찍는 시간이 따로 있고, 영상 속의 나를 보면서 과거와 비교하고 더 나아지도록 가다듬는 게 폴 댄스의 기본이다. 몸, 특히 여성의 몸을 무게와 선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페미니스트가 가까스로 빠져나온 비포 앤 애프터의 세계에 다시 입장하게 된 것이다. 나는 도저히 몸과 손에 붙지 않는 폴과도 싸워야 했고, 거울 속의 나, 영상 속의 나와도 싸워야 했으며, 이런 질문과도 싸워야 했다. 새로운 운동을 배우며 달라지는 몸을 보여주려는 나의 욕구와 기능적인 면을 제외하고는 몸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려는 내 믿음은 공존할 수 있을까? ‘눈바디’와 보디 프로필에 ‘찰싹’ 달라붙은 이 운동을 하면서, 보여지는 몸의 선을 아름답게 만들려는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운동 하나에 너무 거창한 질문 아닌가 싶겠지만 수많은 여자가 그랬듯이 내 몸과 불화해 온 내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폴 댄스 영상을 올릴 때마다 작은 불편함이 떠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멈추게 된 건, 공교롭게도 폴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떨어진 순간에도 영상이 녹화되고 있었으므로 발목이 90˚로 꺾여 인대가 늘어나는 순간이 담긴 영상을 갖게 됐다. 한 달 동안 깁스를 했고, 당연히 폴 댄스도 다른 운동도 할 수 없었다. 이상하지만 이 시기에 폴 댄스를 더 해보기로 결정했다. 다른 질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시작한 걸 못해낸 채로 끝내고 싶지 않은 오기가 만든 궁금증이었다. 운동신경이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내가 온갖 운동을 이어오며 얻은 ‘꾸준히 하면 잘하진 못해도 할 수는 있게 된다’는 교훈이 폴 댄스에도 유효한지 알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가 폴 댄스를 하면서 갖게 된 질문에 나름의 답을 찾고 싶었다. 몸에 대해서도, 움직임에 대해서도, 건강에 대해서도, 몸과 관련된 욕구에 대해서도 계속 고민하고 싶었다.
 
그렇게 폴 댄스를 다시 시작한 지 5개월 차가 됐다. 실력은 겨우 초급 언저리지만 답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별것 아닌 친구의 질문에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보는 사람들이 놀라서 걱정할 만큼 멍이 들면서, 때로 다치면서, 수많은 질문과 복잡한 감정까지 끌어안고서, 왜 이 운동을 할까?  
 
얼마 전 팔꿈치 안쪽에 폴을 끼우고 몸을 대각선으로 지탱하는 동작을 배웠다. 멍이 들려는 팔을 붙잡고 옆에 있던 회원 한 분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정말 변태 같은 운동 아니에요? 이렇게 아픈데 하나도 안 아픈 것처럼 보이게 해야 하잖아요.” 팔의 비슷한 부위가 벌게진 채로 그분이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요! 정말 이상해요.” 환한 웃음에 숨겨둔 속마음이 꺼내졌는지, 질문이 툭 튀어 나갔다. “근데 우린 이걸 왜 할까요?” 그분이 어떤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재밌잖아요.”
 
여전히 폴 댄스가 뭐에 좋은지 잘 모르겠다. 대신 내가 왜 폴 댄스를 계속하고 있는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다른 동작을 배운다는 것이 좋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쓰지 않았던 몸의 구석구석을 쓴다는 게 좋다. 못하던 동작을 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찾아오고, 그 변화를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중력을 거스르는 운동이라는 게 특히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폴 댄스라는 운동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아주 복잡한 재미다. 그러니 계속 생각하며 해볼 수밖에. 언젠가 정말 중력을 거슬러 폴을 붙잡은 팔의 힘으로 몸을 거꾸로 들어 올릴 수 있을 때까지. 이 정도로 멋지고 이루기 어려운 목표를 세웠으니, 아마 오래오래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때는 질문에 대한 나만의 대답을 찾을 수 있겠지.  
 
윤이나 거의 모든 장르의 글을 쓰는 작가. 드라마 <알 수도 있는 사랑>을 썼고, <라면: 물 올리러 갑니다> 외 여러 권의 책을 냈다. ‘여성이 만드는 여성의 이야기’의 ‘여성’이고자 한다.
 
‘ELLE Voice’는 매달 여성이 바라본 세상을 여성의 목소리로 전하고자 합니다. 김초엽 작가, 뮤지션 김사월 등 각자의 명확한 시선을 가진 여성들의 글이 게재될 11월호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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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나

거의 모든 장르의 글을 쓰는 작가. 드라마 〈알 수도 있는 사랑〉을 썼고, 〈라면: 물 올리러 갑니다〉 외 여러 권의 책을 냈다. ‘여성이 만드는 여성의 이야기’의 ‘여성’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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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이마루
  • 디자인 민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