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 새로 문을 연 거대 미술관이 주목받고 있는 진짜 이유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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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 새로 문을 연 거대 미술관이 주목받고 있는 진짜 이유

지난 5월, 프랑스 파리 옛 상공회의소 자리에 거대한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 문화예술계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 미술관은 단순히 그 규모와 소장품 때문에 주목받는 것이 아니다. 84세의 슈퍼 리치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의 꿈이 마침내 이뤄진 순간이기 때문이다.

ESQUIRE BY ESQUIRE 2021.06.30
 
 

어느 슈퍼 리치 컬렉터의 꿈

 
여기, 슈퍼 리치인 남자가 있다. 1936년 프랑스 브르타뉴 촌구석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출세가 불가능할 만큼 절대적으로 공고한 프랑스의 계급을 뛰어넘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가 바로 프랑수아 피노(Francois Pinault). 이 글의 주인공이다. 발렌시아가, 구찌, 입생로랑, 보테가 베네타 등 명품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케링 그룹(Kering Group)의 설립자이자 전 회장인 그는 프랑스 최고의 온라인 쇼핑몰 사이트인 르두트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지난해 〈포춘〉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전 세계에서 27번째로, 자국인 프랑스에서는 4번째로 재산이 많은 거부다. 그러나 그에겐 돈으로 이루지 못할 것이 없어 보이는 이 자본 만능의 세상에서 오랜 시간 이루지 못한 숙원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세계 예술의 수도 파리에 자신의 컬렉션을 전시할 미술관을 세우는 일이었다.
 
판테온 신전처럼 탁 트인 메인 홀을 장식한 우르스 피셔의 작품. 6개월간 서서히 녹아 없어지는 양초 작품이기 때문에 매일 모양이 변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는 이미 조각상의 팔 한쪽이 사라져 있었다.

판테온 신전처럼 탁 트인 메인 홀을 장식한 우르스 피셔의 작품. 6개월간 서서히 녹아 없어지는 양초 작품이기 때문에 매일 모양이 변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는 이미 조각상의 팔 한쪽이 사라져 있었다.

아트에 대한 피노의 사랑은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미술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한 건 1970년대. 처음 구입한 작품은 브르타뉴 촌부(자신의 할머니를 닮았다고 밝힌 바 있다)가 등장하는 후기 인상파 화가 폴 세뤼시에(Paul Serusier)의 작품이었다. 첫 작품 구입 이후 피노가 걷는 컬렉팅의 여정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는 이미 가치를 인정받은 인상파 등의 클래시컬한 작품들, 너무 지루하지만 안전자산에 가까운 ‘블루칩’ 대신 컨템포러리 아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피노의 현대미술에 대한 열정은 국제 아트페어에 VIP로 등장해 얼굴을 내미는 보통의 부자 컬렉터 수준이 아니었다. 일 년에 대략 스무 명 정도의 아티스트를 직접 만나고, 끊임없이 전시장을 찾았다. 심지어 전시장을 찾을 때는 수행원을 동반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헬기를 타고 날아가 아티스트의 아틀리에에 며칠씩 머무르는가 하면, 전 세계 갤러리에서 발행되는 카탈로그를 ‘공부’했다. 그렇게 쌓은 그의 식견은 아마 어느 순간 아카데미에서 학위를 받은 전문가들의 수준을 뛰어넘었을 것이다.
 
미술계에서 그의 위상을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피노가 한 아티스트에게 ‘파티에만 열중해 작품 수준이 떨어진다’며 일침을 놓은 적이 있는데, 그 아티스트가 바로 현대미술의 한 축을 담당하는 거장 제프 쿤스다. 단지 그가 돈만 많은 컬렉터였다면, 그가 쿤스에게 했던 일침은 우스갯소리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쿤스를 비롯한 미술계 인사들은 피노의 이 발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실제로 쿤스는 일침을 받은 후 심기일전해 작품 활동에 매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모빌처럼 바람을 타고 빙글빙글 돌며 단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는 부훌렉의 조각 설치 작품. 미술관 내 창가에서 보면 더욱 좋다. 특수 처리한 천 위로 파리의 햇살과 날씨가 아로새겨지니까.

모빌처럼 바람을 타고 빙글빙글 돌며 단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는 부훌렉의 조각 설치 작품. 미술관 내 창가에서 보면 더욱 좋다. 특수 처리한 천 위로 파리의 햇살과 날씨가 아로새겨지니까.

피노가 얼마나 많은 수의 작품을 가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2000년 이후 그가 공식적으로 구입한 것으로 추산되는 작품만 9571점이며, 방출한 작품은 고작 192점뿐이다. 게다가 그는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비밀스럽게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파리에 위치한 뤼드 박의 저택, 브르타뉴의 빌라 그레이스톤, 미국 뉴욕 맨해튼의 아파트와 로스앤젤레스의 빌라 등 그의 소유로 알려진 저택들에는 어떤 작품이 걸려 있을까? 파리의 저택에는 몬드리안과 로댕, 자코메티, 리히터가 걸려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프랑스 경제 잡지인 〈찰랭지(Challenges)〉는 그의 컬렉션 가치가 대략 150억 유로(한화 약 20조원)일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소문에 따르면 피노의 측근들은 이 액수를 듣고 코웃음을 쳤다고 한다.
 
이 정도의 집념과 열정으로 컬렉션을 꾸렸으니, 예술의 수도 파리에 자기 이름을 딴 미술관 하나 갖고 싶다는 열망이 들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정도다. 기실 ‘파리 미술관’에 대한 피노의 구상은 이미 2001년부터 시작됐다. 문제는 장소였다. 당시 피노가 점 찍은 장소는 파리 외곽 불로뉴의 세갱섬(Ile de Seguin)에 위치한 20세기 초반의 르노자동차 공장 부지였다. 버려진 공장 부지를 개발하기에 이보다 좋은 방법도 없을 것 같지만, 피노의 계획은 초반부터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다. 가장 먼저 반대의 깃발을 들고 일어난 건 프랑스 정재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형 노조들이었다. 세계화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문을 닫게 된 자동차 공장에 럭셔리 그룹 총수가 개인 컬렉션을 모아두는 전시관을 세운다니, 대형 노조의 심기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인들은 노조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재선을 염두에 두고 있던 불로뉴의 시장은 이 뜨거운 감자를 손에 쥔 채 절차를 질질 끌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피노의 절친한 친구였지만 상황을 지켜보며 개입을 망설였다. ‘지극히 프랑스적’이라고 할 만한 이런 상황이 이어진 끝에 피노는 5년여 만에 두 손을 들고 항복 선언을 했다. 세갱섬을 포기한 것이다.
 
이보다 우아한 벤치를 상상할 수 있을까. 금빛으로 반짝이는 부훌렉의 벤치는 건물 외관을 따라 곡선을 그린다.

이보다 우아한 벤치를 상상할 수 있을까. 금빛으로 반짝이는 부훌렉의 벤치는 건물 외관을 따라 곡선을 그린다.

하지만 미술관을 열겠다는 피노의 의지가 꺾인 건 아니었다. 피노는 미술관 개관을 위한 갖은 노력 끝에 2006년 이탈리아 베니스에 ‘팔라초 그라시(Palazzo Grassi)’를, 2009년에는 베니스 운하 맞은편에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를 연달아 오픈했다. 푼타 델라 도가나가 문을 연 부지는 사실 구겐하임 미술관이 노리고 있던 장소였지만 피노는 팔라초 그라시 개관의 성공에 탄력을 받아 이 부지를 손쉽게 차지할 수 있었다. 팔라초 그라시의 전면에 위풍당당하게 자리한 제프 쿤스의 거대한 강아지 조각 앞에는 연일 사진을 찍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든다. 관내에 들어서자마자 관객을 압도하는 마크 로스코와 칼 안드레 등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런 현대 유명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관광의 도시 베니스에 걸려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피노라는 슈퍼 리치 컬렉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노는 일개 컬렉터가 아닌, ‘피노’라는 하나의 라벨로 등극했다. 베니스에서 이룬 피노의 성공을 목도한 뒤에야 프랑스의 여론은 바뀌기 시작했다. 남 좋은 일만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프랑스는 세계 어느 국가보다 문화예술계에서 공권력이 강한 나라다. 세계적인 박물관인 루브르나 오르세를 비롯해, 프랑스 전역의 박물관 중 70% 이상이 모두 국립이거나 지자체 소속이다. 미국의 게티 센터나 구겐하임 같은 사립 미술관은 프랑스에서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프랑스에서, 게다가 쓸 만한 부동산을 찾기 극히 힘든 파리에서 개인 미술관을 세우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했을까?
 
피노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일부러 찾아보아야 할 정도로 작은 이 말하는 생쥐다. 다들 사진 찍는다고 난리인데, 사실 사진을 안 찍을 수 없는 귀여움이란!

피노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일부러 찾아보아야 할 정도로 작은 이 말하는 생쥐다. 다들 사진 찍는다고 난리인데, 사실 사진을 안 찍을 수 없는 귀여움이란!

피노는 정계의 핵심부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는 201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오랫동안 유지해온 우파 노선을 버리고, 좌파 후보인 프랑수아 올랑드(Francois Holland)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올랑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같은 좌파 노선의 전 파리 시장 베르트랑 드라노에(Bertrand Delanoe)와 현 파리 시장인 안 이달고(Anne Hidalgo), 그리고 문화부 장관이었던 오드레 아줄레(Audrey Azoulay) 등이 피노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시 재경기획부 장관이었던 에마누엘 마크롱(Emmanuel Macron), 즉 현 프랑스 대통령 역시 피노의 미술관 설립 계획에 동참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달고의 오른팔이자 파리시 도시계획 담당자였던 장 루이 미시카(Jean Louis Missika)는 파리 상공회의소 소유로 18세기에 지어진 밀 보관 창고이자 옛 상품거래소였던 자리를 미술관 부지로 추천했다. 2015년 파리시는 8600만 유로에 파리 상공회의소로부터 이 건물을 사들였고, 이듬해 이 자리에 피노 미술관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니까 결국 슈퍼 리치인 피노 역시 50년짜리 세입자 신세인 셈이다. 1년에 1500만 유로(한화 약 200억원)를 지불하는 슈퍼 세입자이긴 하지만 말이다. 피노는 팔라초 그라시와 푼타 델라 도가나를 리노베이션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여기에도 투입해 1억5000만 유로(약 2000억원)짜리 공사를 단행했다. 그렇게 피노의 파리 미술관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앞에는 셰리 레빈, 뒤에는 루이스 로울러. 쟁쟁한 미국 상원 의원들을 플라스틱 컵으로 풍자한 셰리 레빈의 대작과 1950년대 미국인의 삶을 재구성해 담아낸 루이스 로울러의 작품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걸려 있다. 마치 미국의 그제와 어제를 상징하는 듯한 모습.

앞에는 셰리 레빈, 뒤에는 루이스 로울러. 쟁쟁한 미국 상원 의원들을 플라스틱 컵으로 풍자한 셰리 레빈의 대작과 1950년대 미국인의 삶을 재구성해 담아낸 루이스 로울러의 작품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걸려 있다. 마치 미국의 그제와 어제를 상징하는 듯한 모습.

개관 전시에는 ‘개막(Ouvertur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로라하는 유명 큐레이터들을 뒤로하고 피노가 처음으로 직접 나서 콘셉트를 잡고 설치까지 감독했다. 로마의 판테온처럼 원형을 이루는 미술관의 심장부, 19세기 만국박람회 당시 덧붙여진 거대한 유리 돔 아래에는 우르스 피셔(Urs Fischer)의 조각품이 자리를 잡았다. 16세기 메디치 가문을 위해 제작된 대리석 조각 작품인 ‘사비니 여인의 납치’를 고스란히 밀랍으로 본뜬 이 작품과 역시 피셔의 작품인 밀랍 의자 여섯 점, 초상 조각 한 점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메인 홀은 텅 비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개막 첫날부터 밀랍에 불을 붙여 6개월 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이 작품들은-이 원고를 쓰고 있는 지금, 벌써 팔 한 쪽이 녹아 없어졌다-개막전을 위한 특별 제작품으로, 작품의 가격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돈을 태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대미술의 화두 중 하나인 ‘미술 작품의 영속성과 가치’에 강한 의문을 던지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피노 미술관의 남다른 정체성은 총 세 개 층으로 이어진 전시관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누구나 알 만한 아티스트, 전 세계 컬렉터들이 염원하는 아찔한 작품을 보란 듯 전시해 관객을 모으는 여느 현대 미술관과는 전혀 다르다. 개막 전시에 등장하는 32명의 아티스트 중에는 신디 셔먼(Cindy Sherman)이나 셰리 레빈(Sherrie Levine)같이 알려진 이들도 있지만, 마사 윌슨(Martha Wilson)이나 루이스 로울러(Louis Lawler)와 같은 사진 전문 큐레이터들이나 알듯한 아티스트의 작품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프랑스에서는 단 한 번도 소개되지 않은, 미국 흑인 미술의 신화적 인물인 데이비드 해먼스(David Hammons)도 그중 하나다. 해먼스는 1970년대의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다. 그는 아프리카의 미술 작품인 마스크를 모으는 백인 컬렉터를 조롱하기 위해 금속으로 가짜 아프리칸 마스크를 만들고, 산업이 되어버린 미국 프로 농구 NBA를 비판하기 위해 모조 다이아몬드 농구 골대를 만들었으며, 감옥 설치물에 ‘미니멈 세큐리티’라는 제목을 달아 미국의 흑인 문제를 정면에서 비판했다. 해먼스의 작품이 도발적이고 반항적인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이를 트위스트 시키듯, 피노의 파리 미술관 역시 문제의식 가득한 작품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현대미술계의 아이러니를 조롱한다.
 
진짜 비둘기처럼 보이는 이 비둘기들은 마우리지오 카탈란의 작품이다. 유머러스한 카탈란의 특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진짜 비둘기처럼 보이는 이 비둘기들은 마우리지오 카탈란의 작품이다. 유머러스한 카탈란의 특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개막전을 통해 드러난 파리 피노 미술관의 행보는 여러모로 피노의 라이벌인 LVMH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의 퐁다시옹 루이 비통과 비교된다. 자수성가의 대명사인 피노와 엘리트 출신인 아르노는 그동안 현대미술 컬렉션에서 여러 번 격돌을 벌였다. 1998년과 2000년 사이 둘은 나란히 경매업체를 사들이며 전투의 포문을 열었다. 피노는 그때 사들인 크리스티를 아직까지 소유하고 있지만 아르노는 필립스 경매를 인수한 뒤 경영에 실패하며 2년 만에 손을 털었다. 게임으로 치자면 일단 피노가 1승을 챙긴 셈이다. 하지만 피노가 파리에 미술관을 설립하지 못하고 베니스에서 떠돌고 있던 시기, 아르노는 불로뉴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s Gehry)가 지은 퐁다시옹 루이 비통을 한발 앞서 오픈하며 잃었던 스코어를 여봐란듯이 만회했다. 이후 퐁다시옹 루이 비통은 오로지 루이 비통만이 할 수 있는 전시를 열며 미술계에 확실한 인상을 남겼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러시아 컬렉터 추후킨의 인상파 작품을 프랑스로 옮겨온 추후킨 전시, 샤를로트 페리앙의 아카이브를 몽땅 털어왔다는 평가를 받았던 샤를로트 페리앙 회고전 등을 열며 여타의 박물관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예산과 규모가 필요한 대형 전시에 주력했다. 컬렉션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르노 회장의 컬렉션은 올라푸르 엘리아손(Olafur Eliasson)이나 쿠사마 아요이(Kusama Yayoi),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 등으로 현대미술이긴 하지만, 누가 봐도 인정할 수 있는 현대미술계의 안전자산 블루칩 목록이라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루이 비통 재단은 ‘아케팅(artketing)’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만큼 아트와 마케팅을 결합한 홍보 활동에 주력했다. 아르노 회장의 퐁다시옹 루이 비통은 프랑스 현대미술계를 쥐락펴락하는 전 파리 시립 근대미술관 큐레이터 쉬잔 파제(Suzanne Page)가 전시 디렉터로 지휘봉을 휘두르고 있는 만큼 현란할 정도로 능수능란하며 프로페셔널하다.

 
NBA 팬이라면 데이비드 해먼스의 이 작품을 눈여겨보자. 크리스털로 둘러싼 농구대를 통해 NBA의 상업성을 현대미술 작품이라는 우아한 형태로 고발하고 있다.

NBA 팬이라면 데이비드 해먼스의 이 작품을 눈여겨보자. 크리스털로 둘러싼 농구대를 통해 NBA의 상업성을 현대미술 작품이라는 우아한 형태로 고발하고 있다.

반면 지난 2000년 컬렉팅에 전념하기 위해 케링의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을 만큼 작품 수집에 진심인 피노는 쟁쟁한 큐레이터들을 컨설턴트로 두고 있음에도 결국에는 자신의 안목을 믿는다. 특히 한 번에 끌리는 작품보다는 두고두고 메시지를 되새기게 하는 작품에 투자한다는 신조를 고수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작품, 시장에서 외면을 받는 작품도 과감하게 구입한다. 피노 미술관 1층에 걸려 있는 마르샬 레이스(Martial Raysse)의 작품이 대표적인 예다. 레이스는 1960년대 한때 각광을 받았으나 이후 꾸준한 내리막길을 걸었으며 이후에는 평론가들로부터도 외면받은 작가다. 그러나 피노는 전 세계의 이목이 쏟아지는 개막전에 레이스의 작품을 걸었다. “닭살이 돋거나 눈물이 고이는 작품, 나에게서 그 어떤 감정을 이끌어내느냐가 작품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아름답지만 아무 감흥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게 바로 나쁜 징조죠.” 피노의 말이다.
 
피노 미술관은 루브르와 퐁피두를 잇는 박물관 벨트 사이에 위치해 있다. 지척에는 19세기에 새워진 초대형 백화점 사마리텐(Samaritaine)이 오너인 LVMH 그룹의 진두지휘 아래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6월 23일 재개관을 앞두고 있으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축가 미셸 페로가 재단장한 문화재급 건축물인 루브르 우체국이 위치한다. 세계 미술의 노른자인 파리, 그 파리 중에서도 노른자위 땅에 드디어 문을 연 피노 미술관을 보자니, 북한의 고향으로 소를 몰고 떠났던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이 오버랩됐다. 입지전적인 인물들이 인생 말엽에 마침내 소원을 이룬다는 자본주의의 신화를 직접 두 눈으로 봤기 때문일 것이다.
 

 
PHOTO courtesy of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by Stefan Altenbur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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