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세계 질서는 코로나19라는 새로운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소위 일 세계 나라들도 하루 사망자가 수백 명에 달하고, 유서 깊은 성당들이 시신 안치소가 되는 지옥 같은 풍경을 보고 있다. 세계 사망자 2십만 명을 돌파한 지금, 먼저 안정권에 다다른 아시아 몇몇 나라는 조심스레 ‘뉴노멀’을 말하지만 그건 여러 면에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여행의 판도는 어떻게 바뀌고 있을까? 일단 간단한 건 가상이라고 쓰고 망상이라고 읽는 여행이다. 여러 여행 잡지에서 ‘코로나19가 끝난 다음 여행을 간다면?’ 이란 주제로 기사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현재나 한두 달 후 갈 곳을 추천하는 게 아니라 ‘언젠진 모르지만 다 같이 꿈꿔 보실래요?’ 하는 슬픈 기사들이다. 거기 불을 지핀 건 그리운 곳들의 관광청. 소셜미디어에 사진과 인상적 글귀를 올리는 작업은 재택근무로도 가능해선지 국토 전체가 봉쇄된 나라, 매일 수백 명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관광청들은 일하고 있다. 텅 빈 밀라노 두오모 광장과 사르데냐의 해변, 안달루시아 지방의 언덕 마을 풍경 등이 그 계정들에 올라와, 가고 싶은 자와 오라고 하고픈 자를 한 마음으로 울게 한다.
VR 헤드셋이 있으면 망상 여행은 한결 쉬워진다. 구글에만도 360도 풍광을 볼 수 있는 가상 현실 콘텐츠가 상당수 있어서 원하는 지역을 탐험가처럼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다. 카프리 해안 절벽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다가 베르사유 궁전 예술품들을 감상하고 세계 최대 규모 손둥 동굴 안도 헤매 보았다. 집에서 휴양 여행도 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폐쇄 중인 일본 효고현 아리마 온천 90개 업소가 가상 온천 콘텐츠를 유튜브에 올렸다. VR 헤드셋을 쓰고 집 욕조에 몸을 담그면 마치 아리마 온천에서 노천 욕을 하는 듯 풍광도 즐기고 오가는 나카이 상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가상으로 그룹을 지어 알래스카, 몬태나 동물원, 푸에르토리코 등을 모험한 프로그램도 인기가 좋았고 페루, 유타 마이티5 국립공원, 그랜드캐니언 등 투어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 신기한 망상 여행들의 치명적 단점은 끝나면 급격히 밀려드는 일명 ‘현타’,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다. 와이너리에서 익어가는 와인을 시음했는데 마트에서 산 와인 맛이고, 바닷가 절벽에 섰는데 바닷바람이 전혀 불지 않고, 온천에 몸을 담갔는데 감전될까 두려워지는…. 오감까지 만족시키는 4D 콘텐츠나 기기는 없나 전문가에게 물었더니 코로나19라는 변수를 예측 못 해 아직은 드물지만, 곧 생겨날 예정이라고 한다.
외국은 못 가더라도 어딘가는 가야만 하는 사람들 덕에 국내 여행은 전에 없이 활성화될 것 같다. 사실 수십 년 전만 해도 신혼여행조차 제주 등 국내로 가는 게 당연했지만, 최근엔 상대적으로 싼 주변국 관광 물가 때문에 국내 여행이 한없이 사양길을 걸었던 게 사실이다. 코로나19가 발발하기 직전 강원도 스키장에 갔을 때 성수기임에도 텅 빈 슬로프에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시설 대비 싼 스키장 내 호텔엔 내국인 스키어보다 겨울이 없는 나라에서 눈 체험 차 온 외국인이 더 많았다.
하지만 해외로 나갈 길이 좁아진 지금부턴 마치 ‘80년대 성수기 같은 국내 여행 붐이 다시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5월 초황금연휴엔 제주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7만 명이 제주를 찾을 거라고 한다. 없는 지방색까지 만들어 아기자기하게 즐길 거리를 준비한 타국에 비해 국내 지방 관광지들은 너무 비슷비슷하고 가격적 메리트도 적은 게 문제긴 하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라고, 지방 정부와 민간 창작자들이 힘을 합쳐 지역색을 만들고 바가지 물가도 단속한다면 외국인들도 힘들여 찾는 관광 명소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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