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흐트러져있는 전선들, 숫자 조형물, 시멘트 라디오, 불안정한 전류가 흐르는 전구, 쓰러진 나무와 늙은 부표. 이것은 바로 김소라 작가의 아뜰리에 에르메스 전시 작품이다. 여느 예술품을 볼 때 그렇 듯, 작품에대한 작가의 의도가 궁금한데, 그녀는 자신의 오브제들에 대한 말을 아낀다. 다만 이번 전시 ‘없음’이 의미하는 것처럼 작가가 그 어떤 방향을 제시하지 않으므로 생겨나는 다양성, 자유로운 움직임과 교류를 원한다. 작가 김소라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의 단상, 감각, 느낌, 만남과 기억들을 담아 낸 열 다섯 조각의 길고 짧은 ‘수필’들을 제안하고 있다. 그녀의 이 수필들은 관객과 동일한 시공간 속에서 서로 교차하고 섞이며,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들을 탄생 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안하고 있다.
성게모양을 한 자그마한 시멘트 덩어리로 이름은 갈라파고스. 섬에 사는 바다 거북의 이름에서 빌어왔다. 이 시멘트를 빚어 만든 라디오에서 각 국의 라디오 방송들이 두서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동하는 두 원의 움직임을 끝없이 따라가는 영상작업. 작곡가 인종우와 리차드 뒤다스가 만든 배경음악과 함께 흰색의 두 기하학적 형태가 이태원 골목길 구석 구석을 정처 없이 배회한다. 산책을 좋아하는 작가가 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위성안테나였고, 이것은 이 영상작업에 모티프가 되었다고 한다.
서울 근교에서 채집한 수 백가지 서로 다른 길고 짧은 소리들을 작곡가 장영규가 믹싱한 16채널의 사운드 작업. 시장, 주방, 길거리, 공항, 학교, 동물원 등지와 수 많은 사람들의 음성과 노래 소리들은 서로 교차하고 믹스되어 추상적인 시공간으로의 여행을 제안한다.
총 열 한 개의 크고 작은 숫자 조각들의 모임. 작가는 숫자를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을 본다. 존재란 곧 데이터들이 집합이며, 이 데이터들은 숫자로 환원된다. 즉, 모든 물질의 근원과 그 존재란 무엇인가를 다양한 숫자들의 집합을 통해 자문하고 있다.
쓰러진 나무와 긴 시간 바다에 떠 있던 부표를 캐스팅한 작품. 이 두 개의 단편들은 마치 소박한 교향곡의 연주를 듣는것과 같다. 어느 여름 폭풍우에 부러진 나무는 우발적 상황, 드라마틱한 사고, 시간의 멈춤을 노래하고, 세 발 좌대 위에 놓여진 부표는 바다에서의 모진 풍파와 그 세월의 흔적을 표현하 듯 말이다.
작가는 자신의 책꽂이에서 임의로 꺼내 든 몇 권의 책들에서 대사를 발췌한 후, 세 명의 배우들에게 그 대본을 전달한다. 흑백영상으로 전개되는 이 작업에는 소년, 남자, 젊은 여자가 등장하며, 이들은 작가가 제안한 텍스트 내용을 즉흥적으로 연기한다.
어두 컴컴한 새벽 바닷가에서 두 남자가 다투는 장면을 담은 일종의 움직이는 풍경화와 같은 작업이다. 잔잔하고 낮게 흐르는 두 남자의 격투, 거친 파도소리와 함께 동트는 바다의 풍경은 아주 천천히 변화하는 우주적인 시간성을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