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대, 소비되는 건축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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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시대, 소비되는 건축

1988년 하계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된다. 벌써 20년이 넘어버렸으니 당시의 기억이 희미하다. 올림픽의 개최에 앞서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의 존재를 세계무대에 알리게 되는 초유의 국제적 스포츠이벤트가 80년대 후반에 집중된다.

ELLE BY ELLE 2010.06.01

1988년 하계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된다. 벌써 20년이 넘어버렸으니 당시의 기억이 희미하다. 올림픽의 개최에 앞서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의 존재를 세계무대에 알리게 되는 초유의 국제적 스포츠이벤트가 80년대 후반에 집중된다. 민주항쟁의 불꽃이 서울과 전국의 대도시를 휩쓸던 당대의 사회분위기와 중첩되며 국제스포츠제전이 서울에서 연이어 개최되었다는 사실은 이들 제전이 갖는 순수성을 의심케 하는 이유가 된다. 여하튼 서울은 이 두 개의 국제적 이벤트로 말미암아 저항과 축제의 교두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서울올림픽은 이 땅의 현대건축에도 커다란 변화를 주었다. 그중 올림픽공원 내에 신축된 체조경기장과 역도경기장은 압권이다. 올림픽체조경기장은 건물의 수평성을 강조하는 디테일과 케이블 돔 구조방식의 막구조를 이용한 지붕시스템을 도입하여, 경기장 내의 기둥이 없는 무주공간을 실현시켰을 뿐 아니라 자연광의 투과를 이용한 내부조명 대체효과 등 에너지 효율적 측면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끌어냄으로써 이후 세계 최첨단공법을 실현한 건물에 주어지는 <쿼터나리오 ‘88>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김수근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한편 올림픽체조경기장은 김종성의 설계로 지어진 것으로 공원 내 여타 경기장과는 사뭇 다른 조형성으로 합리주의적 성향의 기계미학을 표현한 수작이었다. 김종성은 제1기계시대의 3대 거장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되고 있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로서 우리나라 사무소건축의 전형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경기장과 같은 대공간 구조물의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온 선각자와 같은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을 위한 경기장 설계에서 그의 작품이 역도경기장에 국한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역도경기장은 입체 트러스를 이용하여 내부 공간을 크게 비워놓는 구조역학을 적용시킨 박스형태의 건물로서 건축가는 최적의 공간과 형태를 갖춘 건물을 만들기 위해 도입한 트러스(일명 다케나카 트러스)구조를 적극적인 건물의 외부조형요소로 드러내며 경기장 내부에 기둥이 없는 무주공간을 실현시켰다. 이전까지 구조미학에 기반한 건축조형에 익숙지 않았던 한국건축계에 역도경기장은 예의 체조경기장과 더불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사례로서 주목될만한 것이었다. 역도경기장의 내부공간은 지붕단부의 경사면에 노출된 입체트러스와 경기장 한복판에 설치한 천창으로부터 밝고 활기찬 대공간의 쾌감을 전달한다. 이렇듯 경기장의 외부와 내부가 한 가지 언어로 통합되는 사례를 보는 것은 드문 일인데 바로 그런 점이 이 건물을 김종성 건축의 백미로 평가하는 이유다.      




최근 김종성의 역도경기장이 우리금융아트홀로 새로운 이름을 달았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의 발주로 외형을 건드리지 않은 채 내부에 공연장을 새로 앉히는 사업이 추진되었고, 이후 발주처인 공단에 의해 건립비 충당목적으로 건물의 이름을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우리금융아트홀이라는 새 명칭이 부여된 것이다. 체육시설에서 문화시설로 변화되기까지 이 경기장 또한 오랜 기간 공연장으로서 기능해왔다. 대부분의 올림픽 경기장과 아시아경기대회용 경기장들의 신축시점에 늘상 문제가 되는 것이 대회 이후 활용방안인데 제한된 경기수요에 비해 경기장의 운영 및 관리비용이 부담이 커져 대부분 세금만 축내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이 런 이유로 각급 경기장은 공연장과 같은 다중집회시설로 성격변화를 단행하여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자구책을 벌여왔다.
이 같은 관점에선 체조경기장과 역도경기장의 정황도 다르지 않았다. 역도경기장의 경우, 한쪽 방향으로 선수들의 경기를 위한 무대가 치우쳐져 관람하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는 점에서 공연장으로 활용 시 더 많은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사용자의 평가가 합쳐져 체육시설에서 본격적인 공연장으로의 기능변화를 꾀하게 되는 배경이 된다. 공원 내에 이미 확보되어 있는 충분한 주차시설과 녹지 공간 등은 대규모 관객이 운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라는 점도 배가된 듯하다.
문제는 기존의 역도경기장이 88서울올림픽을 상징하는 체육시설 중 하나라는 점이며, 그 배경에 김종성의 역작이라는 관점도 제기된다. 우리 건축계의 살아 있는 신화적 존재인 김종성에게 우리금융아트홀이란 공연장의 기능전환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25년도 채 되지 않은 건물이 본연의 기능(운영 면에서의 경제적 자립성)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내부공간 전체를 드러내고 새로운 시스템의 작동기계를 심은 에이리언으로 둔갑된 역도경기장이 그에겐 충격 이상의 모멸감으로 다가갔을 것이 분명하다.




발주처 입장에서도 그 같은 건축가의 심기를 의식한 듯 공연장으로의 리모델링 발주단계에서 건물의 외형은 최대로 보존할 것을 주문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공연장에서 주요한 시설인 플라잉타워도 현 건물의 지붕선 이하에서 만들어지도록 설계지침에 있었던 것. 건물의 외형보존이 건물내부공간의 변화에 우선한다는 입장은 근대건축물의 보존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기능이 다한 건물의 철거보다는 새로운 기능의 부여로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시간성을 담아내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논리다. 그 결과 이 건물은 내부공간의 대대적인 수술을 단행하였던 것이다.
건축가는 외부 형태를 만드는 전문가인가? 건물의 내부에 담기는 기능, 즉 프로그램의 입안과 조정자 역할이라는 오늘날의 건축가를 정의하는 기준에 의하면 그 같은 물음은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건축가에게 건물의 내부공간은 외형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과 통한다. 오래 전에 건물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경구가 있었다. 기능주의 시대의 도래를 예고한 건축의 명언이다. 그 논리에 근거하여 최근 들어 기존의 기능이 다한 건물은 외형까지도 변화를 주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 종종 서구의 근대건축보존주의자들로부터도 발설되고 있다. 대부분의 건축가들에게 끔찍한 일이 되겠지만 건물의 생명을 기능성에서 찾는 이러한 세태는 이제 더 이상 건축가에게 덧씌어졌던 창조자(The Architect)라는 명호가 무색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건물이 노골적으로 소비되는 상품으로 등장하고, 기록으로 남았다는 것을 명목으로 손쉽게 폐기되는 오늘날의 시대성에 의거할 때 김종성의 역도경기장은 문명의 시대에도 여전한 야만성의 포획물로, 소비되는 건축의 전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6월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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