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과 스니커즈, 아슬아슬한 대화 || 엘르코리아 (ELLE KOREA)
FASHION

하이힐과 스니커즈, 아슬아슬한 대화

너무 쉽고 간편해진 최근의 옷 입기 방식이 못마땅한 하이힐. 그리고 요즘 여성들의 발걸음이 가벼워진 것은 순전히 제 덕이라고 주장하는 스니커즈. 그 둘 사이의 아슬아슬한 대화.

ELLE BY ELLE 2010.03.22

지미 추 뱀피 소재 샌들 퀀텀(이하Q) 한 번쯤 꼭 만들어야할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이렇게만나게 돼 반갑다.
뉴발란스 스니커즈 420(이하420) 나도 반갑다. 어라, 키 차이가 나서 살짝 기죽는데?
Q (웃음)당신, 요즘 거리에서 쏠쏠찮게 보이더라. 남녀노소, 너도나도 신고 다니는 것 같더라고.
420 음, 그런가? 확실히 나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긴 했다. 단순히 한때의 트렌드 때문이라기단 뭐랄까? 스니커즈를 찾는 사람들의 범위 자체가 넓어진 것 같다. 예전엔 주로 학생들이 많이 신었잖아. 컬러나 디자인이 워낙 다양해진 탓도 있다. 어떤 룩에나 매치할 수 있게 됐으니까. 이젠 연령이나 직업에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스니커즈를 즐기게 된 것 같다.
Q 2년 전 가을이었나? 맞아,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버스에서 블랙 컬러 수트 차림에 백 팩을 메고 당신같은 컬러풀한 스니커즈를 신은 직장인 남성을 보고 화들짝 놀랐던 일이 생각난다. 그건 문화 충격에 가까웠다. 쇼킹했다.
420 놀랐다면 미안하다. 근데 요즘엔 워낙 여성들도 포멀한 옷차림에 스니커즈를 매치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남성들이 수트 입고 신는 건 놀랄 일도 아니지 뭐.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보면 “정장에 스니커즈 신으려고 하는데요....”라는 말로 시작하는 질문이 수백 건이다. 애플사 CEO 스티븐 잡스나 에릭 크랩턴은 공식석상에서도 운동화를 즐겨 신는다. 그건 그만큼 포멀한 룩의 스타일링이 유연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Q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수트에 러닝화 신는 건 좀...
420 이브 생 로랑의 에디션24가 출시됐을 때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서 열린 파티 기억하나? 거기 나타난 스테파노 필라티의 옷차림은? 그는 화이트 셔츠와 폴카 도트 무늬의 포켓 스퀘어로 장식된 코발트 블루 재킷, 그리고 루스한 실루엣의 그레이 팬츠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가 고른 슈즈는 다름 아닌 그레이 컬러의 뉴발란스 스니커즈였다.
Q 그다운 선택이다. 필라티라면 그럴 수 있지. 그는 정제된 룩에 반항적인 요소를 살짝 섞는 데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고수니까. 그런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포멀한 룩은 정직하게 그대로 존재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거지. 내가 좀 보수적이어서 그런가? 난 수트엔 수트에 맞는 신발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 20년 전만 해도 여자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숙녀’가 되면 정장을 하고 다녔다. 그게 당연하던 시절이 있었다. 단정한 스커트 수트에 구두를 신고 한쪽 어깨에 작은 백을 메곤 했었지.
420 그 옆엔 넥타이 메고 커다란 안경 쓴 찌질한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서 있고? 아, 농담이다. 갑자기 영화 <101번째 프로포즈>가 생각났다.(웃음)
Q 그때 그들은 그런 옷을 입으면서 얼마나 정성을 들였겠나? 그런 옷은 아침마다 다려야 한다. 그런 신발은 끊임없이 닦고 관리해야 하고. 그뿐인가? 더러운 곳을 피해 앉고 걸음은 사뿐사뿐 걷게 되지.
420 앗! 그건 내 이름인데? ‘살금살금 걷는 사람’이 스니커즈(Sneakers) 잖아!
Q 농담 그만하고! 아무튼 당신 같은 스니커즈를 신으면 자세와 움직이는 태도가 뭐랄까, 좀 못생겨진다고 해야 하나. 어깨와 허리를 굽히고 성큼성큼 걷게 된다. 아무래도 여성스럽게 걷게 되진 않는다. 플랫 슈즈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어깨나 허리, 허벅지와 종아리의 긴장감이 줄어들지.
420 여성스럽게 걷기 위해, 다리 좀 길고 가늘어 보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되는 것들은 어쩌고? 발의 소리 없는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나? 발의 불편은 곧 몸 전체의 건강 문제와 직결된다. 20년 이상 앞이 좁고 굽이 높은 하이힐을 신으면 흔히 ‘하이힐 병’이라 불리는 무지외반증에 걸릴 확률이 현저히 높아진다. 이제 그 정도는 상식이잖아.
Q 그 점에 대해서는 반박할 말이 없다. 내가 뭐 사람들이 아프기를 바라는 사람도 아니고. 다만 옷차림이 ‘너무’ 편해진다는 게 문제라는 거다. 긴장감이 없어지고, 옷매무새나 자세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게 되니까. ‘성장한 아가씨 룩’은 이젠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 좀 서글프기도 하다.
420 물론 여성들의 옷차림이 간편해지긴 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옷차림이 더 다양하고 자유로워진 거 아닐까? 펜슬 스커트에 스틸레토힐을 신는 사람도 있고, 스니커즈를 신고 백 팩을 메는 사람도 있는 거지. 그건 ‘차려입어야 할 자리’의 범위가 좁아진 탓도 있다. 옛날엔 데이트할 땐 가장 좋은 옷을 꺼내 다려 입는 낭만같은 게 있었다. 그런 점에서 요즘에도 교회나 레스토랑, 갤러리 등에 갈 때 옷을 잘 챙겨 입는 사람을 보면 멋져 보이긴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건 스니커즈냐 하이힐이냐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요즘엔 하이힐이라 해도 이전의 여성스러운 디자인은 찾아 보기 힘들다. 오히려 당신처럼 화려하고 와일드한 디테일을 더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당신도 엄밀히 말하면 정직한 하이힐은 아니지.
Q 맞다. 발의 곡선을 그대로 살린 아름다운 하이힐을 찾기란 정말로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그건 아마도 지난 몇 시즌 동안의 패션 트렌드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워낙 남성적이고 재미있는 요소가 있는 룩이 대세였잖아. 지난 시즌에 40년대 레이디 룩이 돌아왔다고 해도 실제로 거리에 나가 보면, 다들 80년대 패션에 빠져 있었지.
420 에이, 뭐 그런 거라면 이번 시즌엔 좀 기대해도 되겠네. 여성스러운 룩이 대거 돌아온다고 하잖아.
Q 그러지 않아도 기대 중이다. 누드 톤이나 핑크색, 레이스, 러플 등 로맨틱한 무드가 트렌드로 돌아왔다고 하니까.
420 어이, 미안하지만 스포티즘 역시 로맨티시즘과 손을 잡고 함께 왔다는 사실을 아셔야지! 그런데 뭐 운동화면 어떻고 플랫 슈즈면 어떻고 하이힐이면 어떤가. 납작한 플랫 슈즈를 신고도 꼿꼿하고 도도하던 오드리 헵번을 떠올려보라. 진짜로 중요한 건 룩의 완성도와 모델의 태도인 것 같다. 마크 제이콥스도 말하지 않았나? 여성이 섹시해 보이는 것은 무얼 신었는가가 아니라 어떤 자세를 보이는가에 달려 있다고!



*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3월호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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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김자혜
    PHOTO 최성욱
    모델&진행어시스턴트 이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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